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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어떤 왕이었을까?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어떤 왕이었을까?
: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Which Persian monarch was the Ahasuerus of the Book of Esther?)
James R. Hughes
에스더서(book of Esther)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성경 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Ahasuerus) 왕은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라고 믿고 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아하수에로라는 이름과 고대 페르시아어인 크샤야르샤(xshayârshâ) 사이의 명백한 단어적 연관성 때문이다. 그러나 아하수에로를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버지인 다리우스 1세(Darius I, Hystaspes)로 보는 여러 이유들이 있는데, 다리우스 1세는 그가 지었던 중요한 궁전인 수산(Susa, Shushan) 궁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던 반면에, 크세르크세스 1세는 수산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지냈다는 사실이 포함된다. 다리우스 1세 생애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생애의 사건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에 부여된 연대들과 더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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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만 등장한다. 에스더서에서 여러 번 등장하며, 다른 두 곳(다니엘 9:1, 에스라 4:6)에서 등장하고 있다. 다니엘서 9:1절에 언급된 아하수에로와 에스더서에 언급된 아하수에로는 같을 수 없는데, 다니엘서 9:1절의 아하수에로는 메대 족속 다리오(Darius the Mede)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반면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의 통치는 그보다 후대(전통적 연대에 따르면 BC 522~486년, 또는 BC 486~465년)이다[1]. 에스라 4:6절에 언급된 아하수에로 역시 에스더서에 언급된 왕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는 아마도 고레스(Cyrus)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캄비세스 2세(Cambyses II)일 것이다[2].
에스더서의 시작(그리고 전체에 걸쳐)에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는 페르시아 왕은 누구였을까? 그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127개 지방의 통치자였기 때문에,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에 통치했던 왕이었음이 분명하다(에 1:1). 그리스도 시대 이전부터 그에 대한 다양한 페르시아 왕들이 거론되어 왔다(예로, 외경(Apocrypha)과 칠십인역(LXX)에서는 아하수에로를 아닥사스다(Artaxerxes)로 번역함). 에스더서에 기록되어 있는 페르시아 영토의 범위(에 1:1), 왕이 수산궁에서 거주한 사실(에 1:2), 임명된 일곱 지방관(에 1:14), 연안/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함(에 10:1) 등은 다리우스 1세 이전의 왕들을 배제시킨다.
대부분의 현대 주석가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합의는 아하수에로가 다리우스 1세(재위 BC 522~486년)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재위 BC 486~465년)라는 페르시아 왕이었으며, 다니엘서에 언급된 다리오(Darius)라는 왕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다(단 5:31, 6:1ff, 9:1, 11:1). 일부 주석가들은 이러한 신원(identification)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NIV의 번역자들은 이러한 신원 확인을 가정하여 에스더서의 번역본에 크세르크세스라는 이름을 포함시켰다. 이 견해는 네덜란드 학자였던 조셉 스칼리거(Joseph Scaliger, AD 1540~1609)가 역사 연대기 연구에서 처음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3]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AD 1581~1656)는 스칼리거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하수에로를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버지, 즉 다리우스 1세로 이해했다.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였다는 주장에는 주로 세 가지 논거가 제시된다 :
1. 크세르크세스의 통치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성경 외의 사건들은[4] 에스더서에 기록된 아하수에로의 통치 기간과 서로 연관시켜볼 수 있다. 에스더서 1장에 기록된 잔치는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와의 마라톤 전투(Battle of Marathon, BC 490년)에서 패배한 아버지(다리우스 1세)의 복수를 위해 준비하던 시기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 이 잔치에는 수산궁에 소집된 각 지방의 지도자(종속된 왕과 총독)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그리스를 공격하기 위해 함대와 군대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려는 기회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가 페르시아에 있을 때에는, 에스더서의 사건이 일어난 수산(Susa, Shushan)이 아닌,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10년 이상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수산궁을 왕실 거주지로 사용하는 일은 다리우스 1세 이후 아닥사스다 2세 시대까지 줄어들었다.[5] 크세르크세스가 수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는 없다.[6] 살라미스(Salamis)에서 크세르크세스의 해군이 패배하고(BC 480) 페르시아로 돌아온 후, 그가 재위 7년(BC 479년 또는 478년)에 에스더와 결혼했다면(2:16), 그 전 해에 멀리 그리스에 있었는데, 어떻게 수산성의 후궁(harem)으로 처녀들을 모으기로 한 결정(에 2:1-4, 12)에 동의했는지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2. 헤로도토스(Herodotus, 고대 그리스 역사가)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변덕스럽고 폭압적인 성격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것은 에스더에 묘사된 아하수에로의 성격과 일치된다고 제안되어왔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에 대한 애정이 없던 그리스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인들의 적이었던 많은 인물들에 대하여 가혹한 평가를 내리곤 했다.[7] 그리고 크세르크세스에게 부여된 것과 동일한 성격적 특성은 다른 페르시아(그리고 그 이전에는 바빌로니아, 그 이후에는 그리스와 로마) 왕들에게도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되고, 신처럼 숭배받게 된다면, 폭압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현상을 알 수 있다.
3. 펜실베니아 대학의 언어학자인 롤랜드 켄트(Roland G. Kent)는 당시의 많은 설형문자 비문(예: 수산 및 페르세폴리스 유적의 기둥, 석판, 벽, 동상 등)을 번역했다. 설형문자에서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을 크샤야르샤 크샤야티야(xshayârshâ xshâyathiya)라고 지칭하는데[8], 켄트는 이를 '크세르크세스 왕(Xerxes the King)'으로 번역했다. 일부 구약학자들은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의 크샤야르샤(khshayarsha)를 히브리어로 유사하게 기술한 것(approximation)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전 페르시아(또는 메대) 왕이었던 캄비세스 1세(Cambyses I)도 성경에서 아하수에로라고 불려지고 있다(단 9:1). 그는 메대 족속 다리오(Darius the Mede, 아마도 고레스 대왕)의 아버지였다. 그의 이름이 크세르크세스였다는 증거는 없다.[9] 또한 에스라 4:6절에 언급된 아하수에로 역시 에스더서에 언급된 아하수에로와는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10] '아하수에로(ahasuerus)'(이것이 고대 페르시아어 ‘크샤야르샤’의 비슷한 발음으로 음역된 것이라면)는 '아하(aha)'와 '수에로(suerus)'에서 '강력한 사람(mighty man)' 또는 '강력한 눈(mighty eye)'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칠십인역에서 에스더 1:1절의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이 번역된 것처럼, '아르타(arta)’와 '크세르크세스(xerxes)‘와 같을 수 있다. 만약 이 경우라면, 아하수에로는 영어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 아닥사스다)'로 번역될 수는 있지만, '크세르크세스(Xerxes)'로는 번역될 수는 없다. 구약 성경의 일부 기자들은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을 페르시아 왕의 일반적인 이름으로 사용했을 수 있다. 에스더서의 저자는 "아하수에로 (왕) 때에(in the days of Ahasuerus), 아하수에로는...다스리는(the Ahasuerus who reigned)"(에 1:1)라는 문장으로 이것이 증명되는데, 이것은 "왕 때에(in the days of the king), 다스렸던 왕(the king who ruled),..."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크세르크세스 1세 이전에 메대-페르시아 제국에는 크세르크세스(Xerxes)라는 왕은 결코 없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구약에서 바로(Pharaoh, '큰 집(great house)'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pr-'o'에 해당하는 단어)라는 호칭이 개인 이름과 관계없이 많은 이집트 왕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은 페르시아 왕들의 개인 이름이라기보다는 호칭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카이사르(Caesar)'라는 호칭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다른 가능성으로,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버지인 다리우스 1세(Darius I, Hystaspes, 재위 BC 522~486년)였다는 것이다.[11]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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