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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8복. 마 5:1-12 +
산상수훈 8복. 마 5:1-12 +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어떤 의미가 되든 8복의 내용들이 우리의 심성과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삶 속에 배어들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제대로 믿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할지라도 잘 보십시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나름대로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깁니다. 엄청난 갈급함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설교 한번 듣고 싶다, 테입 한번 듣고 싶다, 성경책 한번 보고싶다. 그런 갈급함이 생깁니다. 일종의 심령의 가난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단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내 죄가 아프고 또 눈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긍휼히 여깁니다. 구제하는 것과 섬기는 것에 헌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 놀라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별로 믿음도 안 좋은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구제한다고 하면 아주 열심히 뜁니다. 제가 볼 때 자기 자신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선교하러 간다고 하면 자기이름 명단에서 빼지마라고 문자도 보내고 그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온유한 자가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번에 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8복의 성품들이 우리 안에서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특징이 되기를 원합니다. 8복 자체가 우리 삶의 지배적인 특징의 중심축으로 옮겨가기를 바랍니다.
1. 왜 의인이 핍박을 당하는가?
8번째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참 의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7번째의 복이 무엇이었습니까? 화평케 하는 자. 피스-메이커가 어떻게 동시에 핍박을 받을 수 있을까 의아하지 않습니까? 화평케하는 자는 인기 좋은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품어주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오면 환호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동시에 핍박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렇잖아요.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였습니다. 희생하는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핍박 당하셨잖요. 왜 핍박을 받느냐,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이 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느냐 하면 8복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은 참아낼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와 다른 것, 자기의 다른 것을 사람들은 받아낼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몇 가지 예들 어보겠습니다. 의로운 아벨이 있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 잘 섬기고 그의 삶 가운데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잘못 없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벨이 의롭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아벨의 의로운 제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는 것, 그러면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변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의인을 죽이는 쪽을 선택할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핍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29절을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은혜를 주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겼다고 했지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시는 이유 그를 위해서 고난받을 때 이기게하기 위해서입니다.
기근이 들어 살아갈 수 없을 때 이삭의 얘기를 아시지요? 이삭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은혜였습니다. 땅 파는 곳마다 오아시스가 터져 나오는 은혜, 샘이 솟는 은혜! 그 은혜 그 핍박 앞에 세상이 굴복하잖아요.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갈 때 세상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이 있을 때 도 고난이 있을 때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핍박을 당해도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아무 핍박도 없습니까? 잘못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먼저 예수 제대로 믿는 사람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놀랍니다. 놀라고 난 다음에 찬사를 보냅니다. 찬사를 보내다가 그 다음에 시기합니다. 시기하다가 나중에는 핍박하고 적대합니다. 초대교회의 반응도 그렇잖아요. 사도행전을 쭉 보십시오, 처음에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놀랍니다. '저 사람들 다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인데 방언을 말하고 외국어를 말하네?' 그리고 칭찬하고 찬사를 보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멋지다. 그러다가 그것이 여러분의 지배적인 특징이 되어버리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핍박하고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이지요?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제가 평생 핍박 없이 살아가는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세상의 기준을 인정하십시오. 거기에 순응하십시오. 세상의 도덕과 윤리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잃은 자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특히 지옥을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전도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전도하는 것을 못 견뎌 합니다. 왜 못 견뎌 하느냐, 그의 삶을 부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의 전체의 기본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도를 제일 싫어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그 삶에 대한 공격이요. 그 삶을 버리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아무 핍박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세상에 있습니다. 선택은 나에게 있습니다. 핍박이냐? 타협이냐? 담대하게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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