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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시편23:1-6 +
안식. 시편23:1-6 +
성경은 창세기부터 안식에 대한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우리는 이 안식에 대해서 보다 정확무호하게 하나님의 안식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안식에 거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히4:1-2“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이것은 히브리서 3장을 이해하고 깨달은 사람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때 모세의 말을 듣던 자들은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불신앙이 아니라, 인간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를 놓고 그들은 신앙이냐 불신앙이냐를 가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그 다음에 존재하신다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 존재에 대하여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불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1. 안식이라는 말이 쉼을 뜻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하나님 기적을 수없이 체험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평하고 불신앙을 나타내자 하나님이 노시며 이스라엘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 히브리서 3장의 결론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 말씀을 듣는 너희는 믿음으로 꼭 안식에 들어가라는 적극적인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의 중심이 되는 단어는 안식입니다. 이 안식이라는 말이 쉼을 뜻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안식은 육체의 쉼을 포함하여 마음의 쉼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육체는 내 마음대로 쉴 수 있을지 모르나 마음의 쉼은 내 마음대로 되던가요. 되지 않습니다.
안식을 나타나내는 헬라어 단어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싸바티스모스’인데 이 뜻은‘육체가 노동을 끝내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둘째는‘카타파우시스’인데‘어느 한순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함으로 안식하는 장소까지 들어간다는 장소적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 즉 천국에 가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 온전히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안식은 우리가 육체 쉬고 마음의 노동도 쉬고 편안한 장소에 들어가서 온전히 그 편안함을 계속해서 누릴 그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안식에는 복이 있고 다른 날과 구별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매일‘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섯 날들은 전부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 안의 창조물들은 언젠가 끝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식하신 마지막 날은 그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하나님의 안식은 끝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 짐승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창조되자마자 그 다음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대로 창조되자마자 안식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땅에서의 안식 예배자가 되는 사람이 첫번째 느끼는 특징은 평안함입니다. 예배만 드리고 가고 평안하고 뿌듯하고 뭔가 행복합니다.
3.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23편은 우리는 마지막에 여호와의 집에 들어간다고 장소까지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세상이 말하는 안식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안식의 엄청난 차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백성들에게는 시편 23편 1절 이하의 모든 말씀들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명했을 때 장정만 60만이 넘는 사람들이 줄줄이 애굽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안식에 대한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로 나와 가나안을 향해 걷던 이스라엘에게 다시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왜 죄 때문입니다. 의심은 불평을 불러오고 결국 고센을 떠났던 1세대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후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가나안 땅도 역시 안식은 없었습니다. 죄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젖과 꿀이 흘러도 소용이 없고, 노동을 쉬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짐 때문에 안식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순간부터 그 죄짐의 무거움 때문에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께로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회개라는 것은 옮긴다는 뜻입니다. 내 죄짐을 내 모든 연약함을 모두 하나님께 옮겨 버린다는 것이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 하시겠습니까? 고집부리고 죄를 가지고 사시겠습니까?
인간은 회개를 통하여서만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회개하고 나면 바로 우리에게 쉼을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배우고 멍에를 메면 평안이 있다고 하십니다만. 이것은 너희 죄는 내가 지겠다 그러니 너희는 거룩한 영이 되어 즉 전도의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쉬어도 마음은 쉬지 못하는 사람, 마음에 중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회개함으로 마음의 중노동을 풀어 버리고 영혼에 완전한 안식을 가지고 있다가 주님 품에 간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의 부활은 영의 부활만이 아닙다. 몸의 부활로도 부활하여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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