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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교회봉사 엡4:7-14 +
신앙과 교회봉사 엡4:7-14 +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출석하다가 교회 출석을 중단하고 있는 교우에게 쓴 권면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답신은 사실상 또 하나의 질문이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진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예배에 출석해야하고 교회 봉사를 해야 할까요?” 정말 교회 없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할까요? 목사님이 다시 답신을 썼습니다. 이렇게 쓰셨다고 합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반어법)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군대에서 훈련이나 소집에 불응하는 군인이 정상일까요? 세금을 내지 않고 투표하지 않는 시민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학교나 스승이 없는 학생이 정상일까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의 교회 생활은 정상이신지요?
성경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자녀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모를 섬기고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가정에서의 봉사의 경험을 통해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집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교회 봉사의 경험을 통해서 정상적인 신앙인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봉사의 상처의 경험이 있었던 분들은 교회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봉사를 기피하는 영적 알레르기성 질환의 증세를 갖습니다. 문제가 어떻게 상처를 넘어 유쾌한 봉사가 가능할 수 있을까요?
1. 각자의 영적 은사를 따라 섬겨야 합니다.
7-10절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그분은 이제 승리자로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그가 정하신 분량을 따라 우리 각자에게 각기 다른 선물 곧 은사들을 선물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엡4:11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런 다양한 교회내의 리더십의 은사적 직분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 있을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역할을 감당할 따름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배당이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해, 그리스도인의 봉사가 교회 안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봉사가 중요하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교회 봉사가 교회 밖 세상에서 삶으로 이어질 때, 다시 말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때 그러한 그리스도인에 의해 새로워집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예배당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변화시키는 것이지, 교회 안에서만 뜨거운 그리스도인이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지요. 용서는 교회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의 용서가 더 필요합니다. 복음이 교회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5;13-14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빛이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나는 세상 속에서도 크리스찬입니다"그
2. 자신을 넘어 서로를 온전케 해야 합니다.
은사 발견은 봉사 사역의 출발점입니다. 이제 자기 은사에 합당한 사역을 발견하셨다면 그 일에 충성하십시오. 그런데 그 사역함에 아주 중요한 경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사역을 결코 일 중심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사역은 철저하게 관계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적 사역은 결국 이웃을 섬기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가장 큰 함정은 자기만족의 수단화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봉사는 이런 자기만족에 목표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섬김의 결과로서 이웃이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의 표현을 빌리면 이웃을 온전케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엡4:12절 보시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동일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동역하면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나의 동역자가 자신의 은사적 가능성을 더 개발하게 되어 어느 날 그가 나 못지않게 혹은 나보다 그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면 이것이야 말로 사역의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역의 현장에서 항상 동역자를 의식하고 그가 모자라는 측면을 어떻게 채워 줄 것인지 혹은 아직 개발되지 못한 그의 은사가 어떻게 꽃을 피우도록 도울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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