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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능성Ⅱ. 요1:35-42 +
나의 가능성Ⅱ. 요1:35-42 +
인생을 살면서 최대의 비극, 왜 사는지 모르고 사는 것 입니다. 왜 태어났는지 모르고 사는 것 입니다. 여러분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저 전구보세요, 비추기 위해서. 그런데 꺼져있다면. 그건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것입니다. 전구가 존재하는 이유는 밝게 비추기 위해서다. 마이크의 목적은 회중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제대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써포트하기 위해서 마이크는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살고 계십니까? 왜 존재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발견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그 은사와 그 달란트의 부합된 내 인생의 미션, 그 목적을 발견한다는 것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서 나를 태어나게 하셨다. 그것 발견한 사람은 달려갑니다. 가능성이 발휘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자녀들에게도 돈을 따라 인생을 길을 선택하라고 말하시면 안돼요. 그게 요즘 취직하기 좋더라. 너 그 과에 가라. 세상에 제일 무식한 부모입니다. 네가 무얼 좋아하니? 너 그거 잘 할 수 있니?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자녀의 장래를 지도해 주셔야 되요.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펼쳐가며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하여 저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미래상에 근거한 목적을 그리고 미션을 발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내 인생 정말 가능성 발휘하고 살고 싶습니까?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라 가셔야 합니다. 나의 과거의 주인, 현재의 주인 그리고 우리 인생의 미래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라갈 수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이 시몬을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먼저 자기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고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형인 시몬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시몬을 한번 만난 것으로 그와의 거래를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갔어요.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시다가 다시 안드레와 베드로를 봅니다. 그들은 여전히 어업으로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태복음 4장에 보시면 19절에 안드레와 베드로를 만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이 말씀 한번 듣고 시몬 베드로가 아주 일관성 있게 주님을 계속 잘 따라갔습니까? 아니에요 따라가다가 흔들리고, 따라가다가 자빠지고, 따라가다가 넘어졌어요. 그러나 주님은 계속해서 이 명령을 주시고 있습니다. 실패했던 제자. 주저앉았던 제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쳤던 그 제자를 찾아 다시 디베랴의 바다에 다시 다가오신 주님,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보시면 그 유명한 말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그리고 베드로가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지 않느냐고, 그래? 그러면 내 어린양을 먹여라, 그 대화가 어떻게 연결 됩니까?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보시면 베드로야 네가 젊어서는 마음대로 살았어. 그러나 늙어서는 내가 좀 간섭 할 거야, 네 인생의 마지막이 승리을 위하여 너는 영광스럽게 죽을 꺼야, 그러면서 그 다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 나를 다시 따라오너라.
2. 여러분 왜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 주님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설계하신 분이라면, 우리인생에 목적을 주시는 분이라면, 그리고 그 설계를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불러주시는 그분이라면, 그리고 그분이야말로 우리인생의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그분이라면,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을 따라가지 않고, 어떻게 인생의 꿈과 진정한 비젼이 실현될 수가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잠시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그분을 따라가는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 저분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저분이 나를 최선의 곳으로 인도하고 있구나. 맞습니다. 주님은 이 제자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려주셨습니다. 그 동일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하고 새로운 삶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간섭해오기 위해서 다시 사신 그 주님이 이제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3. 삶의 보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 제가 좋아하는 말씀가운데 빌2:13절에 보시면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여러분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룩한 열정, 생애대한 아름다운 열정, 생에 대한 뜨거운 소원, 여러분 그 소원을 펼쳐가는 인생을 두려워 마십시오. 세월이 어둡습니다. 환경이 어둡습니다. 우리 시대가 점점 캄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꿈을 잃어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꿈을 펼쳐줄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사 다시 살아계신 주님이 되어 내 삶 속에 들어오기를 원하시는 주님, 그리고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오너라! 그 분을 신뢰하고 그 분을 신실하게 따라갈 때 비로소 우리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을 믿습니다. 그 삶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인생의 보람입니다. 그것이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주이고 구세주이신 바로 그분을 신실하게 따라갈 때 사랑하는 여러분의 인생이 성공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가능성이 펼쳐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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