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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새날이 준비되어 있다. 창 8:6-12 +
축복의 새날이 준비되어 있다. 창 8:6-12 +
오늘의 본문은 “40일을 지나서”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참 의미가 많은데 준비의 시간 혹은 고통과 방황의 시간을 의미하는 숫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방황의 시간이 40년이었고, 엘리야는 밤낮으로 40일 길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했습니다. 모세도 40일 간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율법을 전달 받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한 열두 명의 정탐꾼도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예수님도 40일간 유대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을 치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노아 시대 40일간 밤낮으로 호우가 내려 홍수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이 비가 시작된 때를 창세기의 기자는 2월 17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7:11-12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그러나 홍수 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고통과 불편은 계속되었습니다. 먼저 150일간 그러니까 약 5개월간 홍수 직후의 물이 빠지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창8:3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그리고 다시 40일이 지나간 것입니다. 11월 10일 드디어 40일 지난 후 희망의 새날이 밝아 오기 시작합니다.
1. 어떤 고통에도 끝남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시간관을 일컬어 종말론적 시간관이라고 일컫습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동시에 끝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허무한 종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완성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인생을 살면서 고통과 시련의 밤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고통과 시련을 견디는 일에 있어서 좀 더 강인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통은 불신자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고 그 끝은 희망이고 완성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 뚜껑열린 하늘에서 쏟아 붓던 장마 비도 끝났습니다. 홍수도 물러갔습니다. 틀림없이 노아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그 장마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였습니다. 온 지면을 덮던 창일한 홍수의 기세도 결코 꺾일 것 같지 않은 홍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8:2을 보십시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하지 않았습니까? 드디어 비는 그쳤습니다.
오늘 끝날 것 같이 않는 어두운 인생을 지나가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비는 곧 그칠 것입니다. 홍수도 물러갑니다. 이 모든 상황의 반전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비밀은 본문8: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으실까요?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여기 비밀의 열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2. 고통이후 축복의 새 날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올 것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창9:1-2“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이제 새로운 시대, 번영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비바람, 길고 지루한 홍수와 같은 역경의 시절이 지나가면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축복의 날을 준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님은 그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또다시 그렇게 홍수로는 고통 받지 않을 것을 언약하고자 9장 8절 이하에 보면 하늘에 무지개를 걸어놓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무지개는 하늘 위에서 보면 완전한 둥근원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땅에서 보면 반원입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하나님과 인간이 반반씩 나누어 낀 사랑의 반지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하니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위에 계신 그분과 우리사이에 말입니다.
3. 예배함으로 축복의 새 날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일이 무엇입니까?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새 날을 열기 위해서는 정결한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지나간 역사 속에 있었던 모든 순교 사건들이 당시에는 비극이었습니다. 대동강변에 셔먼호를 타고 입국하다가 생명을 버린 토마스 선교사의 사건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희생으로 오늘의 한국, 그리고 한국 교회가 되었다면 그의 희생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열기 위한 거룩한 제물이 아니었던가요?
그러나 이제 더 중요한 것은 토마스 선교사도 아닌 저와 여러분이 바칠 정결한 제물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기심 입니다. 우리의 교만입니다. 우리의 탐욕입니다. 우리의 시기심과 질투심입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정결한 제물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주께 드리십시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예배의 본질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우리가 다시 거룩한 예배로 우리의 인생을 드리기 시작한다면 노아시대 새로운 축복의 날을 여시던 주께서 다시 한 번 이 땅에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미래에 축복의 새 날을 열어 주실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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