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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약1:5-12 +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약1:5-12 +
출20:24“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이복을 받기위해 여러분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의 모든 삶에 최우선하여 점검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는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과 인간적인 생각이 충돌하매 그만 약속을 놔 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육적인 아들을 얻으려다 낭패를 보고 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버렸더니 육적인 이스마엘이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대적하는 이슬람의 중동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 평화의 영적인 자녀, 축복의 자녀 이삭이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사람의 방법으로 키우면 이스마엘과 같은 육적인 자녀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 이삭과 같이 예배하는 축복의 자녀가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지금 이 어려운 시대에 혼돈의 시대에 여러분의 자녀를 축복의 자녀로 양육하게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대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 시대처럼 바로와 싸우지 않습니다, 사사 시대와 같은 때도 아닙니다. 예레미아 시대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배의 대 혁신 예배의 출애굽이 반드시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자녀와 함께 무릎 꿇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예배의 부흥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혼돈의 시대에도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신 이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배가 확산되는 날 우리의 자녀가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회복됩니다. 이 나라 회복됩니다. 이 시대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면 여러분의 가정이. 섬기는 교회가, 이 나라가, 왕성해 집니다.
2.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는 원만한 가정에서 나자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야곱은 편애하는 어머니 밑에서 양육 받았고 요셉은 자신을 시기하고 음해하려는 형제들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 가운데도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망스런 아버지, 미운 형제, 야속한 어머니, 이런 환경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상황을 이기고 일어 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가정의 운명을 바꾸는 힘도 약속을 붙잡는데 있습니다. 기도에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세상에 의지합니다. 물질에 의지합니다. 그것이 그저 행복의 조건이 되 버렸습니다. 말씀 잘 듣고 붙드십시오. 지금부터 우리는 새로운 가문을 일으키는 새 역사를 기록해야 합니다.
다윗은 목동에서 왕이 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면서도 멸망당하고 맙니다. 환경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은 세상의 물결을 거스르게 하는 능력의 힘이 있습니다. 이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3. 요셉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절망의 늪에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를 죽이려는 형들의 음모로 구덩이에 떨어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노예 상인에게 팔려서 노예가 됩니다. 그러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탓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감옥에 갇혀 노예보다 더 깊은 밑바닥 인생으로 전략합니다. 요셉은 17세부터 30세까지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13년 동안 우리 같으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는 이방 나라에서 어떻게 한계를 뛰어 넘었을까요 요셉이 그 구렁텅이와 노예 감옥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자기 위치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을 자기 위치에 맞추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는 그 절망의 늪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려움과 고난에 처하면 자신의 비참한 위치에 초점을 맞춥니다.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왜 형통 하다고 말씀하십니까? 위치는 노예인데 관계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녀의 관계요 약속의 관계입니다. 오늘 이 말씀에 요셉처럼 도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사의 바른 양육은 성도의 상황과는 별개입니다. 조금 독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말로 인정머리가 없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저 밑바닥이면 어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관계라면 그것이 곳 형통이요 부흥입니다. 시23:4-5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내 위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짝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두려움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성공의 자리에도, 실패의 자리에도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위치로 삶을 신앙을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과의 언약을 보시고 그 약속을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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