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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를 원하나이다. 막10:4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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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네 인생의 미래가 보이십니까? 예수님 보이세요?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오늘 본문의 이 소경은 예수님 만났을 때 그 앞에 엎드려서 이런 간절한 고백을 쏟아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기적이지요. 이 치유의 조건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눈이 뜰 수가 있을까요?
1. 첫째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해야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리면서 이렇게 요청합니다. 선생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 왜 그럴까요? 그것은 자기가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구원이 필요하다. 구세주가 필요하다. 나는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음 때문이죠.
여러분과 제 안에도 이런 모순이 있고 갈등이 있고 그리고 미움이 있고 그리고 온갖 증오심으로 포박된 죄인의 모습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새로워져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속에 있는 죄성과 부패성을 발견하다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이 절망의 몸에서, 이불안의 자리에서 나를 구원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는 사람만이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눈을 뜨는 첫 번째 액션입니다.
2. 둘째로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소경 바디매오에게 현제상황을 이렇게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다. 예수가 우리 도성에 방문하셨다. 나사렛 예수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듣고 그가 예수님을 불렀을 때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뭐라고 불렀습니까? 본문의 47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그가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인류의 메시야가 되고 구원주가 되고 사람의 삶을 바꾸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구원자로 오신다고 어떻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문을 듣고. 오늘 우리교회에서 이 설교가 소문 되어서 곳곳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적 바디매오가 수없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본문5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나를 고치고 내 육체도 고치고 내 마음도 고치고 내 영혼을 변화시켜 주시는 분, 내 삶의 통치자, 그리고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나의 희망이요, 구원이신 예수를 믿었습니다. 무엇이 너를 구원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느니라.
그런데 왜 나는 교회에 나와도 인생이 바뀌지 않아요?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를 메시야로 신뢰해 보십시오. 아무도 나를 바꿀 수 없고 나도 나를 바꿀 수 없었던 내 절망과 내 부조리와 내 문제를 안고 예수 앞에 엎드려 보세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 나의 치유자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고백하시면 주께서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치유자로 믿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눈을 뜨는 두 번째 액션입니다.
3. 셋째로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영적인 삶을 살라가는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또 믿는 자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도 기도의 장애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바디매오도 단 한번의 부르짖음으로써 그 기도가 응답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자마자 바로 눈을 떴던 것은 아닙니다. 다시 본문을 살펴보시면 47절에“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서 그가 눈을 떴던 것은 아닙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부르짖었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육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의 인생은 여전히 어둠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장애요인이 발생합니다. 48절에 보시면 이 장애물은 누구였습니까? 예수를 에워싸고 있었던 수많은 무리들, 그 많은 사람들이 장애 요인으로 등장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소경을 향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는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그리고 심히 소리를 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할렐루야! 이렇게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부르짖었을 때 그 때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 합니다. 단 한번의 기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가 노력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안 깨달아지더라고요. 또 어떤 사람들은 제가 기도했는데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더라고요. 성경은 단 한 번의 기도에 꼭 응답이 된다는 그런 약속을 하신 일이 없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그런데 그 구하라는 말이 한 번만 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구하라, 찾으라! 한번만 찾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찾으라는 뜻은 지속성의 의미 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겉옷을 버리고 달려갑니다. 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용기, 그 순간 두 가지 눈을 뜹니다. 육체의 눈을 떴습니다. 영적인 눈이 떴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할 일 예수님 따라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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