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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일에 충성한자Ⅱ 마25:14-30 +
적은 일에 충성한자Ⅱ 마25:14-30 +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의 문제가 어디 있느냐? 자기에게 그것을 맡겨 주신 주인을 믿지 못했습니다. 주인을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마25:24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주인을 향해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번역하면 당신은 인색한 사람입니다. 주인보고 인색하다고 그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혹은 두 달란트를 주면서 나에게만은 왜 한 달란트 밖에 주지 않았느냐. 당신은 나에게만 짜고 인색한 분이군요. 아마 이런 의미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인생을 다 살고 살아계신 주님 역사의 심판자이신 그분 앞에 우리가 충성 된 종으로 나타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신뢰하는 의식. 인생을 너무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 이렇게 보지 마시고 항상 비교하고 그러지 마시고 늘 신뢰하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맡겨 주셨다 이렇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뭐 그렇게 탁월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말도 못하고 그런데 어떻게 이 백성을 설득해 갖고 이 백성을 이끌고 나갑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랬더니 모세가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모세보고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모세야 너는 나의 온 집에서 충성된 자로다. 신실한 사람이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우리 인생에서 이런 성실함에 충성스러움에 결론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나머지 살아가야 할 인생을 내다보면서 저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이 신뢰하는 의식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충성 된 자 로 나타나기 위해 필요한 의식, 첫 번째 맡은 자의 의식, 두 번째 신뢰의식 세 번째 중요한 의식은 존재의 의식입니다. 존재 의식.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소유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 더 많은 소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은 이것은 훨씬 적은 소수이긴 하지만 존재의 가치관,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소유의 가치관에 무게를 두지 않고 존재의 가치관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만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서, 더 많은 기술을 소유하기 위해서, 소유를 위해서 달려가는 인생 을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그 것을 위해서 땀을 흘립니다. 소유와 성취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어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물게는 존재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 인생은 소유로만 따질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을 다 살고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본문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들이 칭찬을 받았던 이유가 반드시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꼭 다섯 달란트 남겼고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두 달란트를 꼭 남겼기 때문에 주인이 칭찬하셨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남긴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주께서 보셨던 어떤 성실함, 그것이 칭찬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칭찬한 내용을 잘 보세요. 착하 고 충성스러운 종아 그 칭찬의 내용이 뭡니까. 어떤 질적인 칭찬을 했습니까?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충성스러운 내 종들이여. 또 계속되는 칭찬에 무엇 이 있습니까? 착하고 충성 된 종아 네가 어떤 일에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작은 일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인생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심판 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서 인생을 결산할 때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 앞에 드러내 야 할 이 신실함의 열매, 충성의 열매가 우리의 삶 속에서 준비되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5장의 한 부분이고요 마태복음 25장 전체를 읽어 보십시오. 또 선행하는 장 마태복음 24장을 읽어 보시면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한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 기독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주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사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이라면 주님의 재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두뇌로 고백하는 것과 마음으로 믿고 그렇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정말 주님이 오실 것을, 다시 역사와 시간 속에 그분이 돌아오신다, 이 사실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십니까?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 것이고 따라서 내가 살아왔던 삶, 또 인류의 모든 역사는 그분 앞에서 반드시 심판되고 결산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그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충성된 종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두뇌로 고백하는 삶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환경에서든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자신들을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첫 사랑을 잃어버린 신앙이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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