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달리다굼Ⅱ 막5:35-43 +
달리다굼Ⅱ 막5:35-43 +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주님! 그 주님은 나에게도 동일한 자비와 동일한 긍휼을 베풀어 주실 줄 을 믿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내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다 가 인생을 포기해버린 이 사람의 간절함을 들으시고, 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 사람을 치료하시는 주님은 내 집에서도 동일한 역사를 행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웃들을 보면서 이웃이 잘되는 것을 보고 낙담하지마시고 내 믿음이 강화될 수가 있어야 돼요. 성경의 기록은 그들이 됐다가 아닙니다. 너도 된다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 보자면 이것은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갈 길이 바쁩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체하고 있습니다. 자, 성질 급한 사람은 여기서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이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었던 사건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네가 기다릴 수가 있느냐?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가 있느냐? 여전히 나를 신뢰하느냐? 바로 이러한 시험이 또한 이 사건 속에 게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주님이 곁에 계시다면 절망의 때는 아닙니다.
오늘 이 본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주님만 곁에 계시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계속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주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그 부활의 기적, 그것이 나의삶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삶이 부활의 기적을 경험하려면 무엇을 해야 옳을까요?
오늘 본문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35절 같이 읽겠습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상황은 끝났습니다. 희망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이 회당장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 절망의 상황 한복판 속에서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시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것은 현재 시제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문법적 시간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2000년 전의 말씀만 아니라 현재 명령형입니다. 누구에게요 지금 나에게 두려워 말고 믿어라. 계속 해서 믿어라 이 말입니다.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2.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최후의 절망, 마지막 절망은 뭐예요.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삼킵니다. 어린이도 삼킵니다. 노인도 삼킵니다. 죽음의 확률은 100%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최악의 절망 속에 서도 주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고도 우리는 또 하나의 같은 사건을 성경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 구였던 나사로. 이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주님은 이 무덤 앞에 오십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 위대한 선포에 네가 이것을 믿느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가 이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주님을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이 소녀도 일어났습니다. 달리다굼. 일어나라. 부활했습니다. 부활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이 가진 육체적 사망의 절망. 육체적 사망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부활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이 확실하다면 깨어 일어남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3. 달리다굼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나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세례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순간, 나는 죽고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였어 나는 주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세례는 또 하나의 위대한 사건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구원받은 사람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육체적으로도 부활할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다시 살 것입니다.
이 부활의 위대하신 주님은 나의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소망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도상에서 우리가 무력함에 시달리고 우리가 좌절하고 우리가 주저앉아 앞이 캄캄할 때 주저앉은 우리 곁에 부활의 주님은 그 때도 어김없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딸이여 일어나라.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요5:25 보시죠“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음성을 듣는 순간 살아난 것입니다. 달리다굼. 주께서 말씀하시면 이 말씀은 소망이 되어 희망이 될 줄 믿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