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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기뻐하라 빌3:1-9 +
주안에서 기뻐하라 빌3:1-9 +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의 신앙이 진짜 신앙인지. 가짜 신앙인지 알 수 있을 까요? 그 사람이 들고 다니는 때묻은 성경을 보고 알 수 있을까요? 아니면 기도할 때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을까요? 참 신앙의 표지는 때 묻은 성경도, 떨리는 목소리의 기도도 아닙니다. 성경은 참 신앙의 표지를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도 후에도 주실 것을 믿고 기뻐해야하며, 전도해도 기쁨이 있어야 하고,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도는 교재를 통해서도 기쁨을 누립니다. 이러한 기쁨은 성도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성도는 핍박 중에도 기뻐합니다. 우리는 전도해도 기쁨이 있어야 하고, 기도해도 기쁨이 있어야하며, 성도 간에 교재를 통해서도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증거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10년, 20년 믿어도 내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고 항상 피곤함을 느낀다면 빨리 예수 대학병원 가셔서 종합검진 받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MRI을 찍어 봐야 합니다. 육신이 병들었다 해도 예수님만 잘 믿는다면 고침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데, 영적인 병이 들면 다 잃습니다. 지옥 갑니다. 감기만 가지고 병원에 가도 의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갸웃둥 거려도 무슨 몹쓸 병이 들었나. 불안해하면서도 영적 병을 진단해도 무감각이니 과연 문제는 문제입니다.
성도의 믿음의 외적 표현은 기쁨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기쁨 즉 믿음을 빼앗는 요인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다시금 잃었던 기쁨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사는 성도의 비밀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빌3:2를 보시겠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여기에 개, 행악자, 손할례당이 나옵니다. 표현은 세 가지로 되어 있지만 지칭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즉 모두 바리새주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바리새주의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형식주의와 외식주의요 바리새주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적 중 또 하나는 신앙을 추상화시키는 것입니다. 중세 때 프란체스코는 평생을 거지같이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한 벌의 옷만을 입고 살았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거지 생활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는 주님 앞에 설 때에 완전히 무소유의 가난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 자신이 죽으면 입고 있던 옷도 벗겨 달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가난은 나의 신부라는 말과 같이 프란체스코는 가난과 결혼한 것입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유용하게 증거될 수 있는 길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을 바쳐 지킨 가난을 붙들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프란체스코가 우리 성도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가난과 결혼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과 결혼한 순결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나의 신랑이란 말입니다. 예수가 나의 신랑이기에 가난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는 곳이 불 속이라도 나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랑이시기에 마라나타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소망하며 견디며 인내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과 부요가 우리의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권세가 목적이 아닙니다. 야망이 목적이 아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오직 천국입니다 그래서 기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이 다니엘의 3친구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들어갔던 풀무불 속이라도 우리도 그들과 같이 견디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할 천국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만이 순결한 것이 아니라 여기 모인 우리도 찬양권능교회 성도도 순결한 신부인 것을 잊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가난한 사람들 많이 구제하고 사회사업을 많이 하는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사회사업은 사회사업가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란 뜨거운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생명을 걸고 죽어 가는 영혼을 많이 건져내는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외침에 순종하면서 예수님과 같이 가난한 사람도, 소외된 사람도, 돌아보는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 입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내 인생의 문제가 치유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근심했던 문제, 막혀 있던 인간관계, 가족간의 불화가 치유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교회가 치유되고 부흥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육신의 치유도 기대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하는 치유의 시간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배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천 번을 불러봐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갈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평생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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