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될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눅19:1-10+ 작성자 섬김이 작성일20-03-29 02:32 조회625회 댓글0건 관련링크 목록 본문 변화될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눅19:1-10+ 삭개오라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성경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19장 1-2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 사람의 이름이 먼저 삭개오였다고 말합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을 알고 보니까 청결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날 이 사람의 집에 들어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 죄인의 집에 예수가 들어갔다고 난리입니다. 청결하다는 이름의 뜻과 달리, 그는 동네에서 소문난 죄인이었습니다.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인생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까요. 이름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기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 좋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우리 부모가 나를 낳아 주시고, 네게 좋은 이름을 붙여 주시면서, 좋은 인생을 살라고 주신 이름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기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회적 기대를 미치지 못하고 인생을 살고 있다는 열등감을 저마다 다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그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기회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눅19:1절에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예수가 저 갈릴리에서 요단강 저 동편의 데가볼리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마다, 인생이 변했다고 사람들이 소리치며 그를 따라다니는 예수. 그 예수가 지금 우리 동네에 와서 우리 곁에 지나가신다. 열 두해를 혈루증을 앓으면서,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재산을 탕진했지만 는 그러나 고쳐지지 않는 병 때문에 인생에 대한 절망 속에 살던 한 여인이 지나가는 나사렛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자기 병이 순식간에 치료되었다고 소문난 치료자 예수, 예수가 지나가신다. 삭개오에게 기회였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한참동안 읽다보면 결론이 바뀝니다. 왜냐면요, 삭개오가 이 사람은 키가 작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 군중 속에서 키 작은 삭개오가 쉽게 예수님을 만날 수가 아니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꼭 만나야만 했었습니다. 이런 것을 구도의 갈증이라고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만나고자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세리장이 세무서장이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체면의 옷을 벗어 던지고 올라간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예수를 만나야겠다. 내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나는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얘기를 읽다보면 성경 이야기는 이렇게 변합니다. 아마 삭개오가 나무 위에서 이렇게 다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앞에 지나가봐라, 소리 칠거야. 예수님. 그냥 이렇게 부르면 실례일거야. 앞에다 뭐라고 붙여야지.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렇게 부를까. 아니면 위대한 휴머니티안 예수여.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딱 뽕나무 앞에 오더니, 삭개오가 부르기도 전에 삭개오를 올려다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삭개오야. 이때 삭개오가 받았을 충격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감이 안 옵니까? 어떻게 저분이 내 이름을 알아. 나를 만나지도 않고 나을 알고 네이름을 알고 나를 부르는 저 예수. 예수는 누굴까?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삭개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오늘 이 진리가 발견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눅19장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얘기.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아마 이런 생각도 했을지 몰라요. 나도 예수라는 분을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 아십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시는 것 보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더 알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그래서 성경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분의 미션을 그분의 사명을 설명하는 놀라운 대목마다 이런 말씀이 반복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 인자란 사람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오셨습니까?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잃어버린 어린양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까지 찾아오신 것입니다. 삭개오를 찾으시던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 나를 찾습니다. 여러분을 찾습니다. 친구들에게 초대받아 오시고 이웃에게 전도 받아 오셨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초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고 계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 대답해 보실까요. 여러분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인생의 목적은 어디입니까? 살다가 살다가 죽으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모르신다고요. 그래서 인생은 방황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75억의 인구 가운데 인류의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나란 개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나를 아시는 분. 나를 이름으로 아시고, 나의 좌절과 내 눈물과 내 고독과 내 갈등을 이해하시며 내가 살아온 인생의 히스토리와 내 모든 삶의 발자취를 기억하시고, 아시는 그분. 나를 포기할 수 없어 하시는 그 분. 나를 을 만나고 싶어서 조용히 그분은 지금도 다가오십니다. 이 기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삭개오차럼 우리 곁에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