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눈이 열리게 합니다. 고전 3:1-9 + 작성자 섬김이 작성일20-03-29 02:33 조회530회 댓글0건 관련링크 목록 본문 말씀은 눈이 열리게 합니다. 고전 3:1-9 + 오늘날 세계 제일의 부자는 미국의 빌 게이츠다. 그가 현재 가진 재산은 500억달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50조원쯤 됩니다.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 일을 위해 그리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내놓은 돈이 300억달러입니다. 얼마전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세상을 뜨기 전에 앞서 그러니까 죽기전에, 살아생전에, 전 재산 95%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내놓고 나머지 5%만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놀라셨죠? 그러나 그 성장배경을 보면 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빌 게이츠가 열한 살 때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모두 암송하게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그 중에서도 한 구절을 묵상하고 평생 실천했습니다. 눅6: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천하 만물의 소유주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심는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식임을 겸손한 마음으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말씀은 변화 받게 합니다. 우리도 우리가 마음대로 즐기고, 원하는 대로 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는 일마다 잘된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살아도 모든 게 잘된다고 무슨 일을 해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고 합시다, 사람들은 이것을 형통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삶에 실패와 고통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안심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일겁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변화를 위해 자신을 설득하고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감정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변화를 두려워하는 감정을 다스리고 그 변화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면, 뭔가 눈에 보여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사람은 변화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변화를 무척 싫어하는 것이 또 사람입니다. 우리가 힘들지만 변화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변화가 없으면 성장할 수가 없고 성장이 없으면 믿는 자의 행복을 맛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말씀을 깨달음으로 출발합니다. 할렐루야! 2. 말씀은 눈이 열리게 합니다. 말씀으로 깨달아 눈이 열리면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안보이던 아름다운 미래가 보이며 열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깨닫지 못한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합니다.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깨달으면 최소한 30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자신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즉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쥐를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쥐를 보고서 평화와 박애의 상징인 미키 마우스를 보았습니다.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더 설명을 하자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12정탐꾼을 보내는데 10정탐꾼은 열 정탐꾼은 가나안 사람을 거인이라 말했고 그들 스스로를 메뚜기로 몹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은 민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여호수아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으로 봅니다. 똑같은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릅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보는 게 다릅니다. 어떻게 보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보이는 데로 보느냐? 이것은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전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을 봅니다. 결과는 그 들이 보는 대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그 들의 밥이다 고 말한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고 말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3. 말씀은 우리로 비전을 품게 합니다.성도 여러분! 창조적 소수는 비전을 품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미래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건을 보는 것이 비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전에 창13:14-15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기 전에 하늘에 있는 뭇 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와 같이 우리는 보는 것을 얻게 되고, 보는 것을 성취하게 됩니다. 또한 바라보는 대상을 닮게 됩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떠나 삼촌 나반의 집으로 갈 때 빈들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사닥다리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 광야에서 야곱은 모든 것을 다르게 보고, 바르게 보고, 새롭게 보는 안목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깨달음으로 새로운 발견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전을 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