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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겹 줄 전4:9-12 +
삼 겹 줄 전4:9-12 +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여기에는 관점의 차이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국어에서는, 새가 운다라고 표현하지만. 영어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고 계신지요. 단순히 예배를 빠지지 않고, 주일을 범하지 않는 것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관점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믿음은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음의 관점을 소유한 사람은 동굴에서도 노래할 수 있으며 좁은 길을 걸어도 밤낮 기뻐하는 삶이 가능해 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고 예배를 열심히 드린다 해도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새가 운다라고 생각하여 늘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똑같은 새를 가지고 노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는 당장 눈앞에 일어나는 절망적인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잠언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언의 저자는 후하게 아낌없이 주면 점점 더 부요하게 되고, 과도히 아끼면 오히려 더욱 가난하고 궁핍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매우 놀랍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색하지 않고 후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준다면 주는 것을 받게 되는 사람뿐 아니라 주는 사람 자신에게도 어떤 긍정적인 일리 일어나게 됩니다. 사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쥐고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너그럽거나 후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재정적으로는 가난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분명히 영적인 부분에서 궁핍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샘(계산)하시는 것을 보면 수학의 모든 법칙들을 위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더 나누어주고 퍼 줄수록 더 많이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논리적인 사고로는 위의 말씀이 틀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수록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산법이 “얼마나 영광스럽게 비논리적인가” 하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세상의 수학 법칙에서는 2+5는 7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2+5는 5.000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시고 거기에 축사하셔서 전능하신 능력의 곱하기 공식을 적용하심으로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세상의 논리와 수학 법칙은 더 높은 차원의 법칙인 하나님의 계산법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한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사람, 두 사람, 아니 두 사람보다 세 사람이면 더 힘이 셀 것 아니냐 아니 더 많음은 많을수록 더 셀 것 아니냐 보편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세 번째 힘이 나타나는데 이 힘은 두 사람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다시 말하면 당신의 능력과 친구의 능력이 합하여 아주 새롭고, 심지어는 두 사람의 능력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이 나오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아주 가깝고 좋은 선한 우정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의기를 투합할 때에 단지 두 사람의 능력만이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힘 1+1=3의 능력이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또 하나의 힘은 우리의 선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입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우리가 가진 논리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성도와 교재 가운데, 또 다른 하나님의 힘이 개입하시므로 끊어지지 않는 삼겹줄의 우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성도간의 교재, 우정은 헌신적 이여야 합니다. 우리와 주님간의 우정도 헌신적 이여야 합니다. 한 예로 어떤 과부가 겨우 한끼 식사분의 밀가루와 기름을 가졌는데 그것이 갑자기 여러 날 동안 먹을 수 있는 분량으로 늘어났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왕상17장에서 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가 혹심한 기근 가운데 먹을 것이 없어 마지막으로 남은 밀가루 조금과 약간의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요청을 받고 자신과 아들이 먹고 죽어야 할 마지막 떡으로 엘리야를 섬겼습니다. 이 사르밧 과부의 헌신으로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사이에 또 다른 힘이 개입하십니다. 할렐루야!! “이게 삼겹줄입니다.
너와 내가 아닌 또 하나의 하나님의 힘” 그 개입이 기적으로 나타나 그 과부는 비가 내릴 때까지 집에 있는 가루의 통과 기름병이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기적으로 보상하십니다. 믿고 섬김과 헌신의 보상입니다. 우리의 논리로는 남아있는 약간의 밀가루와 기름을 다 사용하면 이제 다 끝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텅텅 비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와 나 사이에 또 다른 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논리와 수학의 법칙은 더 높은 차원의 하나님의 계산법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위대한 실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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