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구원의 의미 엡2:1-10 +
구원의 의미 엡2:1-10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우리가 만약 그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얼마나 아프셨나요? 얼마나 두려우셨나요? 그때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복음서를 보시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을 설명하는 대목마다 반드시 이런 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는 구원을 위해서, 우리들의 구출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그 대답을 바울 사도의 유명한 에베소서 2장의 본문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부활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의 부활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엡2: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신 사건, 구원은 부활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존재하는 구원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오해가 있다면, 구원을 단순히 개선이나 개혁의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 교회 나가고 예수 믿더니 사람이 좀 나아졌어!" 하는 수준, 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수준에서 구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식으로 구원을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구원은 단순한 개선이 아닙니다. 구원은 새로운 존재의 창조입니다. 보다 나은 인간이 아니라 새 인간 새로운 존재로의 부활 사건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에베소서 2장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끔씩 교회에서 대표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그런데 성경은 그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어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고, 영적으로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영적인 시체란 말이지요.
여기에서 죽었다는 말은, 성경에서는 항상 단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허물과 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단절되었다는 말입니다. 허물과 죄라는 것은 비슷하지만, 기능적으로 차이가 있는 개념이에요. 허물이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잔디밭에 팻말을 써 붙입니다. "들어가지 마시오!" 그런데 들어가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 그것이 허물입니다.
반대로 이 죄라는 개념은 내가 맞추어야 할, 명중해야 할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빗나갔다는 말입니다. 화살을 쏘았는데 목표에서 빗나가요 그러니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허물과 죄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법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지요. 그런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고, 해야 할 것은 하지 못한 즉 우리는 하나님 법을 깨트렸어요. 하나님 법을 깨트렸으니까 죄인이지요.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에게서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영적인 시체가 된 거에요. 영적으로 죽은 거에요. 영적인 시체에게는 해답이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시체에게는 생명이 들어와야 돼요. 새로운 생명이 들어와야 돼요.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아멘!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