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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원리 사55:1-11 +
말씀의 원리 사55:1-11 +
인생에는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내 속에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이 있고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능력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약1:17절을 보니까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과 은혜를 주신다고 믿는 인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마5:3절 산상수훈에 팔복의 내용을 점검해보면 마음이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있는데 첫 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나의 모자람 나의 부족함 있다는 것입니다. 내 능력과 힘을 가지고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이 부어 주시고 하나님이 채워 주셔야만 살 수 있다는 가난한 심정, 영적으로 구걸하는 심령이 될 때에 그것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런 사람에게만 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편34: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하나님이 가까이 해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가난함이 중요합니다.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1.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보면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십니다.
왜냐하면 복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쓰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정말 기가 막히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승승장구합니다. 부족함이 없어요. 모든 교회 안에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별의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중에 세상을 호령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신기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렇게 다윗과 같은 왕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겸손할 수 있습니까?' 스토리를 들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께서 치신 것이 있습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피눈물 나는 일이 있습니다.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재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복은 무엇입니까? 항상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바닥으로 길 줄 아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마음을 먹는 것, 이것이 복입니다. 그 다음 복이 무엇입니까? 애통하는 자의 복이라고 했습니다. 왜 애통합니까? 죄가 보이기 때문에 애통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는 축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이웃이 보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있으면 절대 이기적인 모습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쁨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있어요. 얼굴 쳐다보면 기쁨이 보입니다. 얼굴이 생명입니다. 심지어 스데반을 보십시오. 돌멩이에 맞아 죽어 가면서 그 얼굴을 무엇이라고 묘사합니까? '천사의 얼굴 같더라.' 이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의 특징입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죄가 보입니다!
죄가 보이니까 부르짖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어찌합니까?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쭉 설명을 합니다. 8절을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성령이 오셔 가지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죄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한다, 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폭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참 의아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 자기 자신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을 쓸 때의 순서를 보면 고린도전서를 제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에베소서를 쓰고 죽기 직전에 목회서신을 쓰지 않았습니까. 디모데전서를 마지막에 썼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묘사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고후서 15장 9절을 보니까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나를 사도라고 표현합니다. 그 다음에 엡3장 8절에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라고 묘사합니다. 사도에서 성도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가면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표현합니다. 롬7장 24절보시겠습니다. "오호라 나여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는 고백이 나오잖아요.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죄를 보여줍니다.
3. 또 하나는 우리 주변에 죽어가는 영혼이 보입니다.
이 영혼들을 놓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영혼 어떻게 합니까?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은혜를 주십시오.' 그래서 결국은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내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출발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어주십시오. 은혜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안됩니다! 그 모습으로 나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본문1절을 보십시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출발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난한자의 심령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애통하는 심령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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