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그리스도 몸인 교회Ⅱ 골1:18-23 +
그리스도 몸인 교회Ⅱ 골1:18-23 +
하나님의 교회가 능력이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말씀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듣고 난 다음 그 말씀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갖추어진 그런 교회를 살아있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의 붙든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왕성하게 움직이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었던 모델을 하나 찾아보면. 초대교회 중 안디옥교회를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역사상 두 번째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역동성이 있고 성경에서 말하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와 여러 가지로 비교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한번 설교를 했을 때 3000명이 회심을 할 정도로 대형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는 크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또 능력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능력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기사와 이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지나갈 때 베드로의 그림자에 닿기만 해도 병자가 낳는 능력 있는 교회였습니다. 반면에 안디옥교회는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사울과 바나바를 빼 놓고 안디옥교회 지도자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안디옥교회는 여러 가지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교회 못지않은 능력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안디옥교회는 머리되신 예수님을 철저히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1.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방법은 바로 예배입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성도 가운데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직장이 무너지고 삶의 모든 인간관계가 다 무너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데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때부터 역사는 바뀌기 시작합니다. 무능했던 사람이 다시 유능해지고 무력한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우리 삶의 무능의 문제는 예배로부터 풀어야 합니다. 마치 어떤 전기기구의 플러그를 전기에 꽂을 때 능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는 머리되신 예수님이 능력의 원천과 나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능력의 원천되시는 예수님을 붙들 때 능력이 생깁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다 그 이야기입니다.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예배를 통해서 무능했던 사람들이 유능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창34~35장을 보니까 야곱이 하몰과 그 아들 세검의 복수에 접한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때 야곱이 선택했던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창35:3절“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은 위기 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죽음과 실패의 자리에서 벧엘로 올라가 예배드리자고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위기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예배는 전능하신 하나님, 나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공급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붙드는 싸움입니다.
2. 예배는 우리의 모든 다른 것을 하나되게 만드는, 녹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반면 교회 안에 예배가 사라지면 분열이 역사합니다. 내안에도 말씀과 예배가 사라지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누구 때문에 예배드리고 누구 때문에 주의 일을 하죠? 예배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계급적인 욕구들을 분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 하는 예배가 있으면,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면 우리 안에 묘한 평준화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서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강력한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붙듭시다. “나에게 능력을 주십시오! 예수님,
3. 또 참된 예배가 있으면 우리 가운데 교만한 사람이 낮아집니다.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드는 참된 예배가 있으면 하나님이 주셔서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을 모르고 다 자기 힘으로 된 줄 알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던 기고만장한 사람들이 겸손하게 됩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집니다. 다 낮아져서 납작하게 엎드리게 됩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게 되고 자기 자신은 낮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분명히 교만할 만한 사람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대적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공포에 떱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강한데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오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다 울퉁불퉁합니다. 산 같은 사람이 옵니다. 교만에 빠져서 이상하게 눈 내리뜨고 목에 깁스한 사람이 옵니다. 또 상처 입은 사람이 옵니다. 모자 푹 눌러 쓰고 인상 팍 쓰고 거의 얼굴이 사색이 된 사람들이 옵니다. 예배는 이 사람들을 살려줍니다. 교만한 사람을 낮춥니다. 그래서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낮아져서 전체가 다 평지가 됩니다. 마치 비행기 활주로 같은 모습이 됩니다.
들어올 때는 다 다른 모습이었는데 나갈 때는 거의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의 모습,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감격의 모습으로 전체가 변화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평준하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의 비행이 이루어집니다. 활주로 같이 달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