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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삼하18:1-8 +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삼하18:1-8 +
전쟁의 승리라든지 인생의 승리는 단순히 숫자의 우위와 군사력의 크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른자가 되어야 한다! 빠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빠른 자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강하다고 다 이깁니까?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붙들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패배감에 빠져 있습니다.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인생 살다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에 머물러있겠습니까? 언제까지 수렁에만 머물러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바닥에서 머물러 있겠습니까? 일어서야 합니다.
1.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
첫 번째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체정비가 필요합니다. 내 자신의 정비부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무너진 사람 있습니까? 우리가 넘어져서 일어날 때에 외부적인 도움, 환경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렁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부터 정비해야 합니다. 내 믿음을 정비하고 내 체력을 정비하고 내 정신상태를 정비하고 내 준비된 모습들을 정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의 법칙 가운데 엔트로피의 법칙이 있습니다. 가만 놓아두면 무질서도가 증대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집도 놓아두면 점점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이 손대지 않으면 점점 모든 것이 다 무질서도가 늘어나는 형태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우리가 어떤 '질서가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상태가 먼저 질서 있는 상태로 만들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 안에 또 다른 신앙의 힘이 들어가야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것을 먼저 재건할 때에 우리로부터의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벽에 부딪친 상황을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강화부터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말씀으로 여러분들의 무너졌던 심령을 회복하고 내적인 정비를 하는 거룩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원칙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십시오.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좌표를 잃고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이제는 예수님 없이 스스로 모든 일들을 결정하고 개척해야 될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마지막 명령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집중해야 된다. 강화해야 된다.'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눅24:49절을 보시겠습니다.“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예루살렘성에 유하면서 열흘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심령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셨으니까 '우리가 이 작은 숫자 가지고는 안돼, 더 많은 동조자들을 모으자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생각으로 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위로부터의 능력이 임할 때까지 자기 자신을 강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오순절의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고 난 다음에 베드로가 복음을 증거하니까 하루에도 3천명이 회개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원칙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재정비가 중요합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할지 첫 단추부터 매십시오. 내 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내 안의 무너진 것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들이 모든 일에 승리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될 줄을 확신합니다.
3.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역해야 합니다.
수렁에서 벗어나서 역전하는 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사람을 쓸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동역자를 쓸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소수의 군대를 세 개의 대대로 나누었습니다. 삼분의 일은 요압의 수하에 당연하지요. 요압은 제일 명장입니까요. 두 번째는 아비새의 수하에 마찬가지지요. 아비새는 두 번째로 명장이니까요. 세 번째 나온 사람이 누구이냐, 가드 사람 잇대입니다. 가드라는 도시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블레셋의 5대 도시 가운데 하나가 가드입니다. 적국출신인 잇대가 다윗에게 와서 충성하니까 그를 3대 장군 가운데 하나로 세울 정도로 그는 인재를 귀중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힘든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는 비결은 서로가 동역하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의 중심 주체가 되면 안됩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불합리한 것들,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사변화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기쁨이 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기쁨, 행복은 일치되어야합니다. 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하여서는 절 때 안 되지요. 신앙의 목적 자체가 나의 필요, 원하는 바가 되기도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고 주님께서 오신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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