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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강. 생수의 강. 겔47:1-12 +
은혜의 강. 생수의 강. 겔47:1-12 +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 일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해 왔습니다. 그리고 1만 명의 젊은이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포로 가운데 25세의 젊은이 에스겔이 함께 갔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희망의 예언자 에스겔입니다. 에스겔이 그발강가 데루빕이라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얼마나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했는지, 어느 날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절망적이었으나 에스겔이 본 환상은 대단히 희망적이었습니다. 그 환상을 중심해서 기록한 내용이 에스겔서입니다.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또 다시 예루살렘을 침공해 성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당시 임금 시드기야를 잡아 두 눈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손발을 묶고 말에 매달아 끌고 다녀 죽였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에겐 이제 조국도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어든 땅입니까 애굽의 종살이 400년 광야40년에 걸쳐 얻어진 이스라엘이 초토화되 이젠 돌아갈 땅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의 예언자 에스겔, 치유자 선지자 에스겔은 상처받은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소망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포로들은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왜 에스겔은 똑같은 상황인데도 소망을 선포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환상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오늘 말씀 중에 하나님의 계획을 아신다면 절망 중에 소망을 선포 할 줄 믿습니다.
1. 에스겔은 이 암울한 상황에서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어떤 위로를 주었을까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가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성전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성전에 물이 그득히 고이며 한번 걸어보라고. 그래서 걸어갔더니 발목까지 물이 찰랑 찰랑 흘러 넘쳤습니다. 사방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한 번 걸어보라고.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다시 물은 점점 차올라 허리까지. 오늘 본문에 생략되어 있습니다만 가슴까지. 급기야 물은 성전에 가득하여 헤엄하지 않고서는 능히 건널 수 없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이 강물이 성전을 한 바퀴 휘감아 돌더니 사막을 향하여 폭포수처럼 흘러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사해 바다에 도착하자 여러분! 죽었던 사해 바다가 살아나 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뛰어 노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사막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데 보니까 사방에 숲이 우거졌습니다. 진귀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무슨 뜻 입니까?
이는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우리)에게 은혜가 온다는 메시지요. 고난 받는 이스라엘에게 희망이 온다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강물의 시작은 성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교회)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은혜의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2.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 사막까지 새롭게 하는 물은 무엇일까요?
요 7:37-39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특별히 물이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기에, 교회야말로 모든 은혜와 권능과 부흥의 근원지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소중한 생명 샘입니다. 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이, 성령의 생수가 제단에서부터 흘러온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수가 흐르기 때문에, 구원의 보혈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오늘 이 복음 듣는 여러분은 마음에 성전에서 이 생수가 흘러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는 곳 마다 생수가 흘러넘쳐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마다 사는역사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이성의 눈으로 교회를 본다면 초라합니다.
웅장한 것도 없고, 화려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얕잡아 보고 말살정책도 펼쳤습니다만, 세상이 무너지면 무너졌지 교회는 망하질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교회의 생명력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교회가 초라하고, 비록 교회가 잘못하고, 비록 교회가 가난해도,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방주이기에 칼빈의 말대로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는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존엄성입니다. 마 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큰 교회도 좋습니다. 작은 교회도 좋습니다. 시골교회든, 다락방 교회든 상관치 않습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오직 교회만이 치료하시고 꽃피우는 생수의 근원이 됩니다. 이처럼 진정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가능하게 되며.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백성들은 영생을 누리며, 한량없는 희락과 평화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흩어진 교회가(에클레시아)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배에서 생수가넘치면 여러분을 만난 모든 사람이 살줄로 믿습니다. 어두운 역사가 살아납니다, 절망의 자리, 죽음의 장소가 사는 장소로 희망의 장소로 소망의장소로 살아날 줄 믿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이 우주 공간에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크고 넓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장소에 교회에 머물러 계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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