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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4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4 +
C. 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 된 모습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할 때 다같이‘사랑’이라고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상 사랑은 차원적으로 다르고 질적으로 다른 게 많습니다. 헬라 사람들은 사랑을 아주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런 사랑, 남녀 간에 사랑, 애정이라고 하는 사랑을 이렇게 에로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런가하면‘스토르게’라고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연적인 사랑입니다. 혈연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은 철저한 끈질긴 피로 연결된 그러한 사랑입니다. 이걸 스토르게라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 간에 사랑, 이 수평적인 사랑, 심지어는 나라를 사랑하든 형제를 사랑하든 친구를 사랑하든 이것이 바로 필로스 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신 사랑, 절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그것을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에로스에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서 자라고 필로스에서 성숙되고 아가페에서 완성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한평생 우리는 사랑 속에 살 뿐더러 사랑을 배우며 삽니다. 사랑 공부하며 삽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배웠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에로스적인 데 매여 있습니까? 아니면, 필로스에 매여 있는 정도입니까? 아니면 끈질기게 스토르게만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희생적이며 조건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아가페적인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아가페적인 이 사랑이 느껴질 때 그게 바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야기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1.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네 부모를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두 가지입니다. 순종이란, 굴종이 아닙니다. 복종이 아닙니다.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겁니다. 공경이라는 것은 원어로 티마 라고 하는 말인데 특별한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 지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높이 섬기라. 낮춰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수평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높이 사랑하는 거예요. 공경하라. 높이 섬기라 이거예요. 이것은 존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옳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공경이란 것은 그를 높이는 것이요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입니다. 내 아버지는 이런 분입니다. 그는 이렇게 훌륭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입니다. 질투 없는 사랑은 오로지 효(孝) 하나뿐입니다.
2. 바울이 살고 있었던 시대도 급격한 윤리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며 가져온‘팍스-로마나’의 식민지 문화는 기존 전통윤리에서 사람들을 해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부모와 자녀사이의 전통윤리에도 상당한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돈을 찾아, 자유를 찾아 부모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냐?”고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주후 60년대 초 로마의 감옥에서 그가 삼년 여를 정성을 쏟아 양육하고 세웠던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이런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전달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사도는 어버이에 대한 그리스도인 자녀들의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책임을 강조합니다.
순종의 책임입니다. 엡6장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부모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가르치는 말씀은 아닙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말씀이 심지어 잔소리처럼 들려도 부모의 교훈 그 밑바탕에도 실상 자녀를 보호하려는 하나님이 주시는 본능 때문인 것을 안다면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정당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1절 말미에 우리가 순종해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옳으니라./자연의 명령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연법 내추럴 로우라고 하지요. 자연법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새긴 양심의 법입니다.
3. 부모에 대한 도리는 하나님의 명령이면서 양심의 명령인 것입니다.
부모의 존재는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모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부모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부모의 눈물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하고, 부모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은 부모 없는 곳, 부모 모시지 않는 곳 그래서 결혼을 해도 맏아들보다는 둘째를 원해요. 부모님이 계시냐? 싫다는 거예요. 둘이 저 멀리 가야, 저 푸른 초원 위에, 단 둘이, 님과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 아무도 없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짐을 짊어질 때 행복한 거예요. 자녀도 짊어지고 부모도 짊어지고 가치 있는 것은 있을수록 귀하듯이 가정은 좋은 것들을 주변에 많이 두어야 더 행복하고 더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가정에서 부모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잘 섬겨야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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