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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 막12:18-27 +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 막12:18-27 +
오늘 이 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 가운데는 교회를 다니면서 도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그 신앙이 죽어있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런 유형의 예수님 당시의 한 종교인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사두 개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세 개의 종교그룹이 존재했는데 하나는 바리새인, 하나는 엣세네파, 하나는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본래 제사장 가문출신들이고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또 상류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하고 결탁해서 친 로마적인 경향을 갖고 그들은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아주 부유계층에 속한 소수 계급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 마인드에 취해 있었고 현실주의적인 사고방식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막12:18절은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향해서 그들이 부활을 부인하는 그들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어느 날 예수님 앞에 아주 희한한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주기를 사람의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아내를 위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옛날 모세의 율법 가운데는 형이 죽게 되면 동생이 그 형수를 데리고 사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하나는 자손을 계승시키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그 당시 여인들에게는 사회보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미망인이 되면 완전한 절망적인 삶의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이 대신 돌보는 그러한 관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뭐 둘째가 죽고, 셋째가 죽고, 넷째가 죽고, 다섯째가 죽고, 여섯째가 죽고. 그래서 칠 형제와 더불어 이 여인이 살았다고 가정을 하고 질문을 하는데. 부활의 때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 이런 괴변 같은 질문을 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에 던졌습니다.
1. 너희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을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성경들은 인정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하기를 모세오경에 보면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 않습니까? 무엇을 근거로 부활을 믿어야 합니까? 그것이 그 당시 사두개인들의 항변이었습니다. 모세오경에 부활신앙에 대한 언급이 없다니.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막12:26-27을 같이 보겠습니다.“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모세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그러면서 나는 산자의 하나님이라 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었잖아요. 죽음으로 끝났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이지,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느냐? 그들의 부활을 전제로 한 것은 우리는 그들이 살아계신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지금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전제로 하지 않을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 의 하나님, 산자의 하나님,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이 말씀 속에서도 부활을 전제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2. 여러분도 하나님말씀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 부활신앙을 볼 수가 있지요. 이 기적으로 얻은 아들이삭. 얼마나 귀한 아들 이였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그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아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그 동일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거예요. 아니 줄때는 언제고 그러나 아브라함은 드디어 많은 고난과 그리고 많은 주저함과 그리고 많은 딜레마 끝에 마침내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자기 아들을 죽음의 제단에다 올려놓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이것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여러분 히11:19 을 찾아보세요. 아주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이 놀라운 말씀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사람들은 부활신앙이 없는 증겁니다.
여기 구약성경에 나타난 부활신앙! 아브라함은 바로 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눈이 열린 사람들은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까지 부활에 관한 증언, 부활신앙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3. 너희가 성경도 또한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못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두개인들은 하나님 믿는다고 주장하고 또 제사장도 있었고 종교의식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이 없었단 말이죠. 성경은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능력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능력입니까? 창세기 1장1절을 보면“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창조란 말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고. 무 가운데서 유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이 죽는 자인들 못 살리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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