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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문을 두드려. 계3:14-22 +
그 누가 문을 두드려. 계3:14-22 +
영국 런던에 가면 소울 바울 교회에 문을 두드리시는 홀만 헌트가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주제로 그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1851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바로 오늘 읽어드린 요한계시록 3장 20절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시는 그림입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한 손에 등불을 들고 한 손으로 굳게 닫힌 한 가정의 집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문을 보면 특징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이 손잡이가 없습니다. 안에서만 열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문을 여는 것은 내 할 일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문을 열면 언제나 주님은 내게로 오십니다. 주님은 내게 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나 위하여 가시관을 쓰시고 내게서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내 삶을 밝은 길로 인도하시려고 등을 들고 문을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온갖 생명과 축복과 보화를 가지시고 내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두드리는 종교입니다. 사람이 가서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맞이하고 영접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죄인 된 우리를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주님은 이 땅에 오셔야 합니다.
그가 오셔야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한 대로 그는 우리로 더불어 먹고 우리는 주님으로 더불어 먹는, 주님과 하나 되는, 주님 사랑 안에 거하는, 주님이 주신 것으로 복되게 살 수 있는 약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영접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기독교는 10년, 20년, 100년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열어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인간의 종교는 내가 가서 두드리는 것입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두드리지만 기독교는 주님이 두드리시고 나는 열어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길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길 되시는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온갖 무거운 짐을 진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내 짐이 너무 무겁고 힘들다고 말하지 말고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내 인생의 모든 짐을 가볍게 해 주십니다. ‘내가 비천하다, 어렵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이렇게 말하지 말고 비천한 자를 위해 오신 주님, 아무것도 아닌 자를 위해 오신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이 비천한 자를 귀하게 만들어 주시고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2.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이 내 길을 인도하십니다.
오늘 읽어드린 라오디게아교회는 에베소라는 곳에서 68킬로미터 지점에 있습니다.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에 의해서 세워진 도시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가운데 이 교회만 독특하게 핍박도 없고 이단도 없고 부도덕한 폐단도 별로 없이 어려움 없이 이 교회는 정말 평온한 교회, 안정된 교회,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이곳은 모직공업이 발달하여 패션계를 이끌어 갈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 아주 사치한 도시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교회는 아주 평화스럽고 은혜로운 교회 같았지만 주님이 들여다 본 이 교회는 영적으로 죽어있었습니다. 사람은 모여 있어도 예수님이 안계셨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해도 예수님의 보혈에 의한 감사와 감격이 없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불러주셔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되는데 모두 너무 좋고 행복하니까 영적인 일에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모두 잘 입었으니까 대단한 줄 알고 화려한 줄 알았지만 주님이 들여다 본 그들은 벌거벗은 교인들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3. 사람은 심령이 중요한 것입니다. 안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모피 옷을 입었을지라도 그 안에 심령에 모피가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심령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주 미지근했습니다. “너희는 차지도 덥지도 않냐? 다른 교회는 환난이 많아서 ‘주여! 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 했지만 너는 기도도 없어, 죽었어, 미지근해.” 정욕은 천도 만도로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영적으로는 미지근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문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들어가 너는 내 안에서 이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해서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으로 더불어 누리는 온갖 은혜와 축복과 기적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심령은 뜨거워집니다. 살아납니다. 소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힘만으로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현대인들이 자꾸 세상 것 다 가지고 세상에 있는 모든 걸 배워서 세상의 것으로 해결하고 만족하고 승리하려고 하니 현대인들은 짐도 무겁고 갈 길은 멀고 복잡하고 어렵고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점점 우리의 삶이 곤궁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영접해야 할 주님은 영접하지 않고 모두 세상 것을 하나님같이 생각하고, 지식을 하나님같이 생각하고, 과학을 하나님같이 생각하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말고 여러분도 주님을 영접하여 자녀를 맡기고 건강을 맡기고 앞날을 맡기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에게로 가야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영접하면 누구든지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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