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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눅16:19-31 +
천국과 지옥 눅16:19-31 +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그릇된 신앙을 비판하는 메뉴 가운데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에 속하는 교인들의 신앙이 지나치게 기복적이고 둘째는 타계적인 신앙입니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축복 -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기복신앙에만 매달려 있고, 또 하나는 이 세상에 관심이 없고 너무 천당 생각만 한다. 즉 타계적이다' 이런 비 판이 있습니다. 이 비판은 한 부분 적으로는 타당한 요소가 있지만 또 한 부분적으로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이 그 동안에 지나치게 기복적이었다는 점은 동의를 하지만 과연 한국 교인들이 타계신앙을 가지고 있었느냐? 그 부분에 관하여서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인들이 기복신앙에 빠진 이유 그냥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일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타계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세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세를 가르칩니다. 그것을 심각한 진리로 가르칩니다. 그것은 영원한 운명을 주제로 하는 결코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피할 수도 없는 게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의 상태는 죽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 영원한 세계의 상태에 관해서 본문은 이런 것을 가르칩니다.
그곳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즉시로 가는 곳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소위 죽는 순간, 즉시로 가는 곳. 그것이 영원한 세계다. 오늘 본문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 되는데요. '한 부자가 있어.' 어떤 분들은 이 본문을 가 리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비유라는 얘기 없어요.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20절에 보시면 부자이름은 안 나와 있지만 부자와 함께 등장하는 주인공인 거지의 경우에 이름이 나와 있죠. 이름이 뭐였습니까? '나사로’그런데 22절에 보시면 '이에 그 거지가 죽었습니다.’보통 죽었다고 말하면 기독교의 가장 단순한 설명은 이런 것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 되는 것. 영혼과 육체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는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럼 영혼은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저 상공을 구천을 계속 떠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소위 뉴에이지 문화가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즉시로 어딘가로 갑니다. 어디로 가느냐? 여기 23절에 보시면 부자는 어디로 갔습니까? 이 부자는 즉시 음부로 갔 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지 나사로는 어디로 갔습니까?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둘째로 그 영원한 세계는 우리들의 의식이 살아 있는 곳이다.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죽은 후의 부자의 상태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본문 23절 같이 읽겠습니다.“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나사로를 보고 음부에서 뭐라고 합니까? 고통 중에. 그가 지금 고통 하고 있어요. 의식적으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통하고 있는 장소, 분명히 여기 의식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24절에 보시면 그가 이 고통의 장소에서, 음부에서 이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24절 보시겠습니다.“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영원한 내세 는 무의식의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의식이 살아 있는 생생한 세계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반대로 나사로가 갔던 세계를 보십시오. 25절 보시겠습니다.“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제 저는 여기서 무엇을 받고? 위로를 경험한다는 말이 무의식이 아니지요. 위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후의 우리 의식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세는 그 의식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셋째로 영원한 세계는 두개의 대조적인 장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부 하데스라는 장소를 묘사하면서 계속적으로 거듭 출연한 단어가 두 단어가 있습니다. 고통의 장소, 그리 고 고민의 장소 끝없는 번민의 괴로움의 장소. 25절에 보시면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거니와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그랬어요. 고민을 받느니라. 이 고민이 단순히 육체적 고민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끝없는 정신적인 고통. 상상해 보세요. 이 세상 후에 사람들은 그냥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고선 생명을 끊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에요. 영원한 정신적인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사후의 모습 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래서 본문16“28절에 보면 부탁을 하나 합니다.“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우리가 총동원 주일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예수 믿으면 평화. 예수 믿으면 기쁨. 예수 믿으면 구원. 적극적인 주제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역으로 거꾸로 정의해 보면 이렇습니다. 부자가 소리치는 겁니다. 뭐라고 소리칩니까? 내 형제들만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나는 이곳에 왔거니와 내 사랑하는 형제들만은, 내 사랑하는 부모들만은, 내 사랑하는 후배들만은, 내 사랑하는 친구들만은 이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소리치고 있어요.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꽃. 영원한 목마름. 캄캄한 어두움.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통곡소리. 귀신들로 가득찬곳. 성경은 이것이 지옥의 정체라고 가르칩니다. 전도 하시겠습니까?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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