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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Ⅱ눅16:19-31 +
천국과 지옥Ⅱ눅16:19-31 +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세계는 두개의 대조적인 장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부 하데스라는 장소를 묘사하면서 계속적으로 거듭 출연한 단어가 두 단어가 있습니다. 고통의 장소, 그리고 고민의 장소 끝없는 번민의 괴로움의 장소. 25절에 보시면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거니와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그랬어요. 고민을 받느니라. 이 고민이 단순히 육체적 고민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끝없는 정신적인 고통. 상상해 보세요. 이 세상 후에 사람들은 그냥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고선 생명을 끊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에요. 영원한 정신적인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사후의 모습 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래서 본문16“28절에 보면 부탁을 하나 합니다.“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우리가 총동원 주일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 가 주로 적극적인 것. 예수 믿으면 평화. 예수 믿으면 기쁨. 예수 믿으면 구원. 적극적인 주제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그러나 반대로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영원한 위로와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곳. 계시록 21장에 보시면 천국의 케텐을 하나님이 조금 열어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막 도달하자마자 우리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자마자 즉각적으로 경험할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가 있어요. 계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거기에 보면 '하나님 이 저희들과 함께 계셔서 저희의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자마자 경험하게 될 첫 번째는 하나님이 달려 나와 나를 안아주십니다. 내가 알아 네가 세상에 있는 동안 얼마나 아파하고 슬퍼했는지를 알아. 그리고 주께서 내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내 눈물이 씻겨지는 장소. 그리고 이어서 천국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다시는 아픔이 없고 다시는 애곡함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성경은 가르칩니다. 자! 여러분! 어디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천국입니까, 지옥 입니까, 둘 중에 하나예요.
2.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영원한 세계. 그곳은 한마디로 더 말하면. 영원한 세계는 어떤 곳이냐?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곳이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두개의 대조적인 장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곳이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갈 수가 없구요. 천국에서도 지옥으로 갈 수가 없어요. 왕래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본문16:26절 보세요.“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가는 것 아니예요. 뭐 그런 것 가르치는 종교가 있습니다만은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날 수 없는곳입니다. 지금 여기가 중요합니다. 이순간이 중요합니다. 이 순간 우리가 어떤 결단을 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상태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곳이다. 죽는 그 순간은 이미 늦은 거예요. 이미 영원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가던가. 영원한 지옥으로 가던가. 죽는 그 순간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줄 아세요? 본문에 보면 사람이 죽는 그 순간 일어나는 다음 사건을 볼 수가 있어요.
본문 22절에 보시겠습니다“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죽는 순간 누가 임했습니까? 천사들이 와서 그의 영혼을 오늘 아브라함의 품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올려갑니다. 천사들은 우리 영혼의 가이드. 이세 상에 살때도 하나님이 그를 보내서 그를 인도하셨다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가는 바로 그 순간. 그 영혼을 영원한 상태로 옮겨가 주십니다.
3. 성경에 나타난 이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흔히 그렇게들 해석을 많이해요. 그것은 성경에 대한 깊은 오해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갔고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난 그 자체가 미덕은 아니예요. 뭐 게을러서 가난해지는 사람도 있어요. 게으름이 미덕일순 없잖아요.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고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가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무엇이 결정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이 부자의 일생 속에는 믿음과 회개가 없었습니다. 죄를 회개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30절 읽어보겠습니다.“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뭐라고 했습니까? 회개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옥에 가서야 뒤늦게 비로소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나사로가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간 것이 아니라 그가 가난해도 생전에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믿었다는 증거가 뭐냐? 그의 이름이 그것을 증거해줍니다. 나사로의 뜻이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다같이 따라 해보세요.”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그가 가난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그의 가난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에요. 나사로는 그의 인생의 역경과 그의 인생의 불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그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믿음이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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