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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할 일꾼Ⅱ 마9:32-38 +
추수할 일꾼Ⅱ 마9:32-38 +
우리가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시면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묘사하면서, 그분에게 대 제사장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제사장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의 아픔이나, 문제나, 어려움이나 고통을 대신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이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해결자. 이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제사장 아닙니까? 그렇다면 좋은 제사장은 뭐냐? 백성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절실하게 같이 느끼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히브리서 4장은 예수님에 대해서 묘사하면서 오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이런 말씀이 나와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이중 부정이죠.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느낀다. 이 대목에서 영어 번역에 보시면 심퍼사이즈(Sympathize) 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심퍼사이즈란 같이 느낀다. 예수님은 더불어 느낀다.
그는 우리의 아픔을 우리의 고통을 우리의 좌절을 우리의 아픔을 느끼신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 바로 그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길 원한다면, 우리는 바로 예수님의 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볼 때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마음.(심퍼사이즈) 그들의 좌절 때문에 같이 좌절하고 그들의 낙심 때문에 같이 낙심하되,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버려둘 수 없는 마음으로 접근해가는 사람들, 내 상처도 있어요. 내 아픔도 있어요. 그러나 자기 아픔 속에만 빠지지 않고, 내 아픔을 통해서 나보다 더한 아픔 속에 주저앉아 있는 이웃들을 향해서 손을 펼칠 수 있는 사람들, 주님은 이런 일꾼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희어져 추수하게 된 이 밭에 고통하고 있는 인류를 바라보시면서 주님은 오늘 이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 저는 오늘 우리 가운데서 이 시대 우리 한번 쓰임받기 위해서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심정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본문의 3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여기 보면 세 가지 아주 중요하게 강조된 동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방법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나오는데 어떤 단어가 나옵니까? 가르치시며 또 전파하시며 그 다음에는 고치셨다 이 세 가지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역방법이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소위 정보 초고속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클릭 한 번만 하면 전 세계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 사고의 변혁이 사고의 틀이 변혁되기를 요청 받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 왔던 모든 일들에 대한 방법이 계속해서 달라지는 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해야 할 방법 가운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임하신 이 놀라운 모본으로 보여주신 방법 이 세 가지입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방법 물론 가르치는 방법은 변화될 것입니다만. 가르치는 방법은 새로운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치느냐? 어떻게 전파할 것이냐? 효율적으로 어떻게 더 빨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어떻게 깊이 있게 전파할 것이냐? 또 어떻게 고칠 것이냐? 상처 받고 고통 받는 이웃들의 짐을 어떻게 우리가 짊어지고 함께 우리가 그들을 도울 것인가라는 방법은 계속 바뀔 것입니다. 개발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구적 방법으로서의 원론적인 방법은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 오실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라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 우리는 계속 전파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라. 우리 주변에 아파하고 마음이 병들고, 육체가 병들고 아파하고 있는 이웃들을 끊임없이 찾아가서 그들을 치료하는 일. 이게 주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해야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방법이 다 한 공통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우리가 가르쳐야 합니까? 말씀이죠. 내 철학이 아닙니다. 내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내 지혜가 아니에요. 우리의 아이디어, 우리의 철학,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으로 인간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을 선포해야 할까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파하고, 병들고, 좌절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무엇으로 우리가 섬겨야 할까요? 말씀으로. 왜요?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거듭나게 하신 구원의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 이 말씀이 생명이라고 믿으십니까? 이 말씀이 희망이라고 믿으십니까? 이 말씀이 빛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빛이요, 구원이요 능력이신 하나님의 말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가르치고, 전하고, 그리고 이 말씀을 권고해서 사람들을 치료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이 말씀에 전문가가 될 수가 있느냐 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꼭 목사와 같은 목회자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적 사고를 가지고 학문이 아닌 말씀으로 우리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다 실제적인 훈련을 통해서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장에 설 수 있도록 준비만 될 수가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기적처럼 쓰시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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