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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꿈값을 노예로 치렀습니다.창37:5~11 +
요셉은 꿈값을 노예로 치렀습니다.창37:5~11 +
꿈 하면 우리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누굽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밭에서 열한 단이 일어나 자기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또 며칠이 지났는데 열 한 별이 자기를 둘러서서 절하는가 하면 해와 달도 자기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열일곱 살이면 아무래도 아직도 어린 티를 벗지 못하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특히 막내나 다름이 없는 처지어서 어리광도 많이 피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꿈을 꾸자 너무나 흥분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런 꿈을 꿨다고 막 자랑하고 그럽니다. 그 꿈 내용을 한번 가만히 보십시오. 꿈을 꾼 사람은 신이 나지만 듣는 사람은 기분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열한 단이고 열한 개의 별이면 자기 형들이 자기에게 절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한다면 틀림없이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에게 절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기분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호통을 맞고 나중에 형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미움을 받다가 드디어는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기구한 운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요셉의 일대기를 읽어 보면 그는 평생 하나님이 주신 꿈을 먹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치러야 될 대가는 아무리 비싸고 힘들어도 그는 최선을 다해서 치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반기 생은 그 꿈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꿈입니까?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꿈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수님 탄생 수백 년 전에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바라보면서 예언한 내용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기쁜 소식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병들고 상한 자들이 고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갇힌 자가 놓임을 받고 눌린 자가 자유를 얻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상처입고 고통당하는 자들이 위로를 받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고 완성되어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영광스러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이 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요, 이 꿈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꿈입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숨을 쉽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기뻐해야합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는 이 꿈 때문에 세상에서 기가 죽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요셉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창39:2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2.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봤습니다.
창39:3절에 보면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봤습니다. 21절과 23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잘 보면‘하나님께서’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께서’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동행의 비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는 하나님으로 표현되는데 친밀함을 나타내실 때는 여호와라고 하나님의 성호를 사용하십니다. 즉 요셉은 여호와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요셉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신전의식’입니다.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도 ,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도 원망만 아니라 불평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망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삽니다. 교인들끼리 모여서 한번이라도 부정적인 소리 안합니까. 아예 재직회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뜻은 아인데로부터 시작합니다. 신전의식이 없습니다. 그럼 신전의식이 뭐야 비유를 통해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급해서 법규를 어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통경찰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과속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방에 과속감시카메라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주의하시겠지요.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 신전의식이 이런 것입니다.
3. 또 하나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꿈은 값을 다 갖고 있습니다. 꿈에는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어떤 꿈이든 값을 치러야 합니다. 요셉은 꿈값을 노예로 치렀습니다. 어떤 꿈도 값이 없는 꿈이 없습니다. 꿈은 큰데 싼 값으로 그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꿈을 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꿈에는 외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할인매점도 없습니다. 일단 내가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성취하기를 원하면 그 꿈의 값에 따라서 내가 희생을 치러야 되고 내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달성하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말입니다. 값을 치룰 각오를 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받았습니까? 성령을 모시고 삽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꿈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꿈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여러분의 꿈과 하나님의 꿈이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 두 꿈을 하나로 묶어서 위대한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여호수아처럼 앞을 향해서 힘차게 힘차게 달려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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