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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가정 창2:18-24 +
인류 최초의 가정 창2:18-24 +
우리가 연극이나 영화를 촬영할 때 에드립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대본에 없는 것을 연기자가 자기의 느낌을 마음에 스케치하여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에드립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에드립에 원조가 있습니다. 혹 이 에드립의 원조가 누구인줄 아십니까? 하와 그는 성경에 없는 말을 했습니다. 연출자는 무대 위에 배우를 세우고 그 대본대로 연기를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이라는 무대 위에 아담과 하와를 세우고 그 대본대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세상이란 무대 위에 우리를 올려놓으시고 대본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와처럼 (대본) 말씀에도 없는 에드립 때문에 망합니다.
아담의 가정은 하나님의 최고의복을 받은 인류 최초의 가정이면서도 성경에는 실패의 가정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담은 실패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아니 아담을 특별하게 대접하고 대우 하셨습니다. 모든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왜 아담에게만 그런 특별한 은총을 주셨는가. 그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입니다 나는 그들을 만들고 그들을 통해서 찬양과 영광을 받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체를 만드시고 모두를 축복하십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분의 뜻은 모든 것이 충만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죽어라 언제 죽나 보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개, 고양이를 키우면서 언제 죽나 보자 빨리 죽어라 이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축이 새끼만 나도 즐겁고 행복한 것은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이 창세기 말씀 중에 아주 특별한 말씀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발견되어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분을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하늘에 세계를 바라본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경외하심을 나타내 보입니다. 창1:26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사람을 만드실 때 특별한 단어가 나오는데 우리라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나오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드실 때 그냥 만든 게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를 존귀한 자로 만드셨다 는 것입니다. 그 존귀한 자가 바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입니다
2. 우리에게는 정복하고 다스리는 어마어마한 축복 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물에게도 복을 주셨지만 동물에게는 일반적인 명령 형식으로 주신 반면 우리에게는 대화라는 형식으로 주셨습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이르시되 말씀하시되 이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인격적인 교제 관계가 성립되어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정복하고 다스리는 어마어마한 축복 권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이 복을 상실합니다. 상실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분은 한번 정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누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렇다면 하와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에는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 우리 절라도 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가르쳐야 되겠죠. 이것을 좀더 유식한 말로 양육이라 합니다.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하와에게 가르쳤다면 그러나 아담은 그 일에 등한시 한 것으로 인하여 하와가 선악과에 대하여 사탄 대화를 시작합니까.(창3:1-6)
3.그들은 복의 근원인 에덴에서 쫓겨나는 최초이자 마지막 사람이 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 배운 사람을 말합니다. 이 잘못 배운 것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는 끈임 없는 애곡의 소리가 납니다. 잘못 배우니까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에드립) 그래 결국 영적으로 죽습니다. 쫓겨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창2:17을 보시겠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는 본인들에게만 해당 데는 게 아니라 바로 그들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에서 나타납니다. 부모의 삶은 바로 자녀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부모로부터 양육 받지 못하고 세상으로 도망친 가인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먼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살맛나는 세상이 됩니다. 모든 것을 회복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올5월 우리 교회 모든 성도의 가정은 말씀으로 교회로 돌아와 회복되어지는 축복의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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