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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43:18-21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43:18-21 +
대망의 2018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뭔가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지난날의 아픔과 좌절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비전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2011년이라는 커다란 도화지위에 무엇을 그리며 채울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12월이 되어 1년 동안 그린 나의 삶이 부끄러운 것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1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꿈을 접고 예전처럼 나약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희망찬 나의 삶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새해 첫 주에 그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고백한 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고난과 핍박이 끊임없이 주어진 파란만장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의 문제로 내일의 꿈도 꿀 수 없는 절박한 환경이었습니다. 사울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압박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인생의 밑그림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들이 체험한 절망감은 이보다 더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책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로 생활은 장기화되었고, 조국의 자유를 회복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스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래의 꿈조차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대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단뿐입니다. 사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와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같은 의미입니다. 이처럼 강조를 위해 동의어를 두 번 사용하는 것을 "동의적 평행법"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강조하면서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한 '이전 일' '옛적 일'은 바로 출애굽 사건을 가리킵니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도 모자를 정도인데, 어째서 이 일을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반어적인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의 놀라운 사건과 현재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사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바벨론 포로의 고달픈 삶 속에서 과거만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보다 더 큰 역사를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전 일, 옛적 일은 기억나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출애굽 때는 바다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이번에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과 같은 어두운 현실에 포로로 잡혀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위해 새 일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절망하지 말고, 또한 과거의 영광만 그리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베푸실 '새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2018년 여러분의 가정이 에덴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덴이 에덴 되는 원리는 장소입니까? 관계입니까?. 장소보다는 관계입니다. 무엇이 에덴의 삶이겠습니까? 어디에 에덴의 삶이 있겠습니까? 에덴이 에덴 되는 축복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절대로 에덴은 더 출세해서 더 부자가 되어서 더 좋은 장소여서가 아닙니다. 물론 에덴에는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장소가 중심이 되고 에덴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에덴 안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옥에도 티가 있습니다. 알곡 속에 가라지는 있습니다. 또 하나 에덴 안에는 여전히 에덴이 에덴 되게 하는 생명나무과실도 풍성했지만 에덴을 에덴 되지 못하게 하는 선악과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사람에게는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유의지입니다. 에덴중앙에 있는 선악과 앞에서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사람은 무엇이라도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던지 마귀의 간교한 유혹 앞에 무너지든지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어떤 곳에서라도 에덴이 에덴 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마귀의 유혹 앞에서 자신을 지켜야합니까? 마귀는 어떤 에덴마저도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이 에덴 되어지는 원리가 장소보다는 관계에 있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아담이 언제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나서 불행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취한 후 에덴 안에서 불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니 자연과도 가시엉겅퀴를 내며 관계가 무너집니다. 에덴이 에덴 되어지는 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 붙들면 하나님은 그 어떤 곳에서도 우리 삶에 에덴이 에덴 되게 하실 수 있는 새 일을 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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