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6-16 +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6-16 +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를 믿는 그 감격의 차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는 것과 나는 당당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의 기쁨이 다릅니다. 본문에서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오후 다섯 시입니다. 이 사람이 주님께 부름을 받고 주의 백성이 되어 포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살게 되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새벽에 노동시장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이 나가서 일거리를 찾아 기다리면 주인이 그 날 필요한 사람을 데려갑니다.
오전 아홉시가 되면 다 데려가는데 한 사람이 오후 다섯 시가 되어도 자기를 데려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안 식구와 먹고 살 일을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다섯 시에 어떤 주인이 와서 자기를 불러갔습니다. 그리고 하루 품삯을 다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아! 나는 오늘 온전한 품삯 한 데나리온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내게 일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내게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한 시간을 일하지만 열 시간을 일하는 사람같이 기쁘게 일하고 축복을 받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다섯 시에 오신 메시야입니다.
독교는 다섯 시의 종교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 마지막 얼마 안 있으면 끝나는 우리 모두의 삶에 주님은 오셔서 불러주시고 택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죄를 지어서 주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없는 죄인, 아무 공로 없어서 주님 앞에 갈 수 없는 이방인인 우리를 불러서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이 놀라운 포도원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럼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해야겠습니까? 어떻게 교회생활을 해야겠습니까? 오후 다섯 시 교인같이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본래 뜻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비유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침 일찍 나와서 일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2천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리고 의롭게 살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거룩하게 살았는데
매번 죄만 짓고 잘못한 이방인이 이제 와서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니 유대인들로서는 항상 불만이 가득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면 우리는 종일 더위를 무릅쓰고 일했는데 우리도 한 데나리온을 주고 이방인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까? 다섯 시에 온 사람하고 우리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비유은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찍 나와서 일했다고 더 큰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양 빛을 악인과 선인에게 같이 주시듯 죄의 구원은 남자나 여자나, 잘 하는 사람이나 못 하는 사람이나, 예수 믿는 믿음을 보고 주십니다. 우리가 아직 구원받지 못했을 때 우리의 공로를 가지고, 우리가 일 한 것을 계산해서 구원을 주시지 않습니다.
2. 유대인들은 여기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항상 개처럼 취급하고 창녀같이 취급했습니다. 마태복음 에도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마 21:32“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사람은 먼저 손을 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먼저 손을 들었느냐 하면 창기가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이방 사람이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죄인이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공로가 없으니 주 만 의지함으로써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영원히 창녀 같고 개와 같으니까 버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죄 많은 이방인을 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생활을, 믿음의 생활을 오후 다섯 시 교인같이 해야 하고, 아침 일곱 시 교인같이 교만과 남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에 감사해야지 다른 사람이 받은 구원 때문에 기분 나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 놀라운 은총을 사도 바울도 자신을 다섯 시의 교인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3. 주님은 죄인을 위해 오셨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 다섯 시의 교인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내가 너무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 공로가 아닌, 내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불러주시고 직분을 주시고 나를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행위로 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하늘나라에 갈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아 영생을 얻고 죄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메시야이십니다. 죄에서 우리를 건지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의 공로로 우리는 죄사함 받고 다섯 시의 교인이 되어 천국에 이르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움이 오고 구원이 오고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죄입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인 죄인을 찾아오신 분입니다. 다섯 시에 있는 교인을 건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