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의 마음 판에 자화상을 그리며 삽니다.그리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가 그린 자화상을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용감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말과 행동을 용감하게 합니다. 그러나 비열하고 비굴한 자화상을 갖고 있으면 비열하고 비굴하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에 그려 있는 자화상을 따라 환경이 조성되고 운명이 형성됩니다. 즉 자기 자화상은 거기에 알맞은 환경을 자기 주위에 불러들입니다.이것이 또한 다름 아닌 무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1. 패배주의적 자화상
어떤 사람은 자기를 실패자요, 가난뱅이로 보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나는 무엇을해도 실패한다, 나는 가난뱅이다.' 가난한나라를 보면 한결같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가난한 의식입니다. '우리는 조상 대대로 가난하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 삽니다. 공포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욥을 보십시오. 욥은 그렇게 잘 살면서도 늘 마음속에 자식과 재산을 다 잃고 몸은 병들고 부인에게 버림을 당하는 자기 모습을 그리며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마음속에 가진 부정적인 자화상 그대로 되었습니다. 자식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리고 재산 다 잃고 몸은 병들고 부인에게는 버림받았습니다.
그때 욥이 뭐라고 했습니까.욥기3:25“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마음속에 그런 자화상이 있으니까 그런 운명과 거친 환경이 그의 생활 속에 다가왔다고 욥은 스스로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암에 걸리겠지, 관절염에 걸리겠지, 죽으려나 보다고 자꾸 이렇게 부정적으로 모든 일이 안될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그려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빨리 그 속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거기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됩니다.열등의식과 좌절감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시당하고 어려움만 당하는 그런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화상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끌어오고 또 자기가 끌려갑니다. 이러므로 패배주의적인 자화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됩니다.그리고 자기 자화상을 새롭게 고치려면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2. 자화상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저주가 다 속량되고 우리는 저주의 여리고를 떠나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이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받아 들여야 합니다.그럼 저주와 질병은 떠나갑니다. 저주와 질병은 '야, 여기는 우리 있을 곳이 못된다. 이제 우리 친구가 아니니 가자'고 하고 축복이, 건강이 '우리 친구에게로 돌아가자 하며 돌아오는 것입니다.무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 받고 형통하는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거지 옷을 다 벗어버리고 눈을 뜨고 그리스도를 따라서 여리고를 떠나간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의 저주의 삶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떠나가 버리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득히 받은 자의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내 잔이 넘친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자화상을 바라보며 "할렐루야" 하고 나갈 때에 끼리끼리 모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의 은혜가 그 사람 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소 : (61139)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대로13번길 3(각화동) 찬양권능교회 TEL : (062) 417-0191
Copyright ⓒ http://www.cgchurch.or.kr// All Rights Reserved. | Powered by jQuery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