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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시편 95:1-8 +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시편 95:1-8 +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개인도 그렇고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 대처법은 주로 그 개인이나 공동체가 가진 신앙관이나 세계관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내가 재수가 없어서 팔자가 안 좋아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믿는다면 그는 체념한 채로 세월 좋아지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소위 운명주의의 세계관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인간 이성이 인간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이성주의의 세계관을 갖고 산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이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고 이성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이런 사람들이 이성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면 절망하거나 삶을 포기하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위기를 맞아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도 위기를 만날 때 예배하십니까?
오늘의 시편에서 시편기자는 위기를 만난 이스라엘 공동체가 해야 할일이 바로 예배라고 말하며 그들을 예배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본문 1절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자”는 초대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시 6절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시편이 대부분 이스라엘이 애급을 떠난 후 겪어야만 했었던 광야에서의 방황과 시련의 시대를 돌아보며 비슷한 또 한 번의 역사적 고난의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95:10절에서는 과거에 사십년 동안의 광야의 방황을 회고시키며 하나님이 그들을 인하여 얼마나 근심했는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할일이 바로 예배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시편기자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본문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또 다른 두 가지 이름에서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두 가지 이유-무엇입니까?
2. 그가 우리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6절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굽혀 여호와를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앞에 무릎을 꿇자” 여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여호와 호세누”입니다. 4-5절에서는 그가 땅을 만드시고 산들을 만드신 분이시며, 바다도 육지도 그가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이 아름다운 땅과 신묘한 산들을 만드신 분, 저 푸르고 푸른 망망한 바다와 펼쳐진 저 육지를 만드신 바로 그분이 또한 우리를 만드신 우리의 메이커. 브렌드는 여호와 호세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7절에서는 그는 그가 지으신 것들 가운데서도 인생들을 특별한 관심으로 양육하며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7절을 읽어 보실까요?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그리고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오늘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왜 그렇습니까? 그가 우리를 책임지시고 양육하시겠다면 우리가 할일은 그분을 바라보고 그의 음성에 순종하면 그 뿐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명히 광야의 시련중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두 가지를 게을리 한 것입니다. 제대로 예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3. 그는 우리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반석이란 말을 히브리어로‘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신 여호와 수리이십니다. 그는 우리 인생의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 인생길에서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방황은 우리 스스로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닮은 고귀한 존재로 지어 주셨으나 그러나 우리의 죄는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우리를 찾아 주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고 우리가 죽을 자리에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이제 우리 인생길에 반석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반석의 그늘에서 참된 쉼을 얻게 되었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우리를 초대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수리)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한마디로 그를 예배하자는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로, 우리의 노래와 시로 그를 경배하자는 것입니다. 왜요? 창조자이신 그분이 우리의 인생길에 반석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방황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크게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시편기자는 시62:2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그러나 세상은 수많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리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그가 우리의 반석-여호와 수리이십니다. 흔들리십니까? 이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여호와수리! 그가 우리의 반석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아래 방황하던 시절 6.25의 전쟁 속에서도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셨고, 지금도 그는 여전히 오늘의 방황 속에서도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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