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창1:1-9 +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창1:1-9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사도신경이 첫 머리에 고백합니다. 이 하나님을 엘로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여러 측면으로 설명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언급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다면 천지를 만드신 분이 아니라면 더 이상 그런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전능하셔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면 그 힘이 어디에 나타날까요? 무엇을 보고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홍해를 갈라주신 일, 태양이 멈춘 사건,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 오병이어, 나사로의 부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이러한 것들을 배제하고 천지창조 하나만을 꼽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천지창조 하나만 보아도 우리는 넉넉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 우주의 무수한 은하들. 우주의 넓이는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있습니다. 누가 이런 우주를 만들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고, 과연 하나님이 그걸 만드셨다면 전능한 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얼마나 오묘하고 정밀합니까? 뇌의 신비는 누구도 완전히 풀 수 없습니다. 우리 몸에 약 60조의 세포가 있고 뇌에는 5000조의 시냅스가 있습니다. 시냅스는 신경과 신경을 연결해 주는 정보처리 장치(신경접합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로 인해서 인간은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첨단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신체의 작은 기관 하나도 원형대로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우리 몸에는 약 10만에서12만km의 혈관이 있으며 지구을 두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길이입니다. 우리 몸을 도는 피의속도는 시속216km 초속 60m 1분안에 완주합니다. 신체 하나만 살펴봐도 시139:14에 시편기자처럼“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께 찬송드리오니, 왜냐하면 내가 놀랍게 그리고 경이롭게 창조되었음이니 이다. 하나님의 일들이 신묘막측 하나이다. 그것을 나의 영혼이 매우 잘 알고 있나이다.”라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순간도 하나님의 창조적인 손길의 어루만짐이 있어서 세상이 존재하며 우리가 살며 움직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창조주를 믿는 신앙입니다.
이제 실제적인 사도신경을 믿고 고백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은 언제나 필요하고 좋습니다. 기독교는 교리와 실천, 이론과 삶의 조화입니다. 사도신경을 교리라고 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실천편입니다. 믿는 바대로 살아야 바른 신앙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인식하고 경배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셨지만 그 물질과 섞이지 않고 초월해 계십니다. 분명한 구별이 있습니다. 개울의 넓이가 한 발짝 만하면 폴짝 건너 뛸 수 있습니다. 미시시피 강이라면 뛸 생각조차 말아야 합니다.‘넓이의 차이죠’그러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이런 차원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창조주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입니다.
그럼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무한한 간극을 인식할 때 타나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무엇일까요? 예배입니다. 예배는 그분의 크심을 알고 나의 작음을 아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전능하신 창조주로 알고 그분의 위대하심과 가치를 인정하고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으면 범심론에 빠집니다. 범신론은 세상 모든 것을 신으로 봅니다. 만물이 스스로 생겼다고 믿으니까 만물이 신이 됩니다. 태양, 달, 인도 길거리의 소, 그리고 인간이 신으로 대접받습니다. 초월명상이니. 뇌호흡, 요가, 뉴에이지 같은 종교행위가 범신론의 변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신경에 따라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2. 하나님을 믿고 맡기며 두려움 없이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지만 창조물과 상관하지 않고 초월해 계신다는 주장이 이신론인데, 틀렸습니다. 이것은 합리주의적인 무신론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물들을 유지하고, 보존하고, 통치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운영하십니다. 이러한 활동을 ‘섭리’라고 합니다. 섭리에는 일반 섭리와 특별 섭리가 있는데, 일반 섭리는 만인에게 베푸는 은혜입니다. 비와 해를 주시고 열심히 일하면 농사가 잘되고 게으르면 농사가 안 되는 것과 같은것이며. 특별섭리는 믿음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의 모든 삶의 경험들을 이용하셔서 최종적으로 선을 이루십니다. 이 말은 신자의 최종적으로 선한 결과가 보장되어 있다는 뜻이지 살아가는 중에 고난으로부터 완전히 면제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험적으로 봐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병이 들고 쪼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혼의 깊은 밤과 씁쓸한 경험들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버무려져서 우리 신앙과 복지에 사용됩니다. 이것은 마치 화가가 어두운 색과 칙칙한 색조까지도 사용해서 명화를 탄생시키는 일과 같습니다.
때로 실수하겠죠, 넘어지겠죠, 그러나 합리화만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이런 것들까지 이용하십니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가스를 뽑아내듯이, 흙투성이 원석에서 금을 빼내듯이 거북한 경험까지 이용해서 하나님은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의해서 우리는 점점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갑니다.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