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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뉴스 마11:23-30 +
굿 뉴스 마11:23-30 +
오늘을 살고 있는 현 대인들이 매우 보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한 질병의 증세를 묘사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구도 확실히 정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성을 마비시키며, 우리의 감성을 혼란시키며, 우리의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억력을 둔화시키기도 합니다. 사고력을 감퇴시킵니다. 삶의 효율성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슬픔을 가중시키고, 불안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적대적으로 위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신체의 메커니즘, 자기 방어현상에서 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고혈압, 심장마비, 위궤양, 불면증, 알코올중독, 각종 암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든 유형의 현대인들의 질병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80%이상의 원인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 경영되면 삶의 위대한 성취를 가능하게도 할 수가 있지만 잘못되면 삶의 모든 성취를 한꺼번에 파괴해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궁금하시죠. 그것이 바로 스트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소위 여가의 문화를 그동안 발전시켜 왔습니다. 각종 문화 활동, 취미 활동, 사교활동, 또는 휴가, 여행, 등산, 바캉스, 혹은 다양한 신체적인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은 필요한 것이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치료에, 건강함에,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만으로 인간은 근본적인 치유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병원 문을 노크하고 있습니다. 저는 병원의 존재, 의사 선생님의 존재, 의약품의 존재를 결코 반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사 그리고 병원, 의료 이것은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정신 건강과 본질적인 정신의 치유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특별한 의사 한분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가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안식, 진정한 자유, 진정한 행복의 처방은 있습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처방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그 처방은 단순하게 두 가집니다.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치유의 처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첫째 처방은 내게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컴언투미”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셨기 때문에 인생이 짊어지고 다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정체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수고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입니다. 인간이 처음 죄를 범했을 때 그때 수고가 찾아 왔습니다. 범죄한 첫 번째 사람 하와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부터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다. 하나님의 벌은 자식을 낳는 것이 벌이 아니라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것이 벌이었습니다. 만약에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 자매님이 아이를 낳으실 때 아주 유쾌하게 기분좋게 지금부터 아이를 낳자 그리고 유쾌하게 출산을 했을지 모릅니다.
또 범죄한 첫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종신토록 땀을 흘리며 수고할 것이라 이 수고는 단순한 노동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노동을 말합니다. 성경은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평가합니다. 노동은 타락 전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에덴의 동산 안에서 아담은 일하며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왔을 때 타락이 왔을 때 달라진 것은 뭐냐 하면 즐거워야 할 노동이 수고로 고통스러운 노동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의 결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죄인에게는 산다는 그 자체가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따라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식과 자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질고, 우리의 질병,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고 우리에게는 치유와 안식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앉은뱅이 걸인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종교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실제의 능력입니다. 지금도 여전 나와 여러분의 짐을 날마다 져주시는 예수를 찬양합니다.
2. 두 번째 처방 을 주십니다. 그것은 내게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라 이 말만 들어도 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게 배우라 그런데 내게 그냥 배우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니까 더 스트레스가 생겨요.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멍에를 메고. 혹시 우리가 이런 오해를 할까봐 다음 절에서 예수님을 친절하게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30절에“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운 것이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내 멍에는 쉽다. 쉽다란 단어는 사실은 더 정확하게 옮기면 내 멍에는 편리하다 잘 맞는다. 그런 뜻입니다.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이 날개를 부담스러운 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 날개가 있어서 새들은 하늘을 향해 비상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 갈일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두 가지 처방을 드렸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드십시오 아침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시고. 저녁에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에게 잘 배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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