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작가인 나다나엘 호손의 “데이비드 스완”이라는 이야기 입니다.스무살 난 스완이라는 청년이 고향을 떠나 보스톤으로 취직을 하러 길을 가다가 단풍나무 숲 한가운데 있는 샘터 옆에 누워 단잠에 빠져 있는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들입니다. 상속자가 없었던 부자 상인 부부가 그 곁을 지나다가 어쩐지 죽은 아들 헨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속삭이며 아들 삼을까 하다가 하인의 ‘떠나실 준비가 되었다’는 말에 생각을 거두고 그의 곁을 떠나갑니다. 그 다음 사랑을 찾고 있는 어여쁜 소녀가 그 곁을 지나다가 그를보고 ‘핸섬한데’ 하고 속삭이며 그가 깨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가 쉽게 깨어나지 않자 그녀는 사랑을 포기하고 떠나갑니다. 그녀가 떠난 후 두 악당이 스완의 보따리를 가져가려고 접근합니다. 만일 그가 깨면 처치하려고 비수를 그의 가슴에 겨누고 있는데 개 짖는 소리에 개 주인이 올까봐 그들은 서둘러 그의 곁을 떠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그가 부자가 될 기회, 사랑을 만날 기회, 그리고 그가 도둑맞을 기회 혹은 살해당할 기회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이런 기회들을 인지할 수 있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오늘 본문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야곱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었다면 그는 조금 늦었지만 자기 옆에 찾아온 은총의 기회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물론 스스로의 깨달음이기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1. 알지 못하였도다.
그의 고백을 다시 들어보십시오.창28:16절“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이제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금년의 7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을까요? 이제 다시 한 번 우리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우리에게 지나간 그 시간들 속에서도 명백한 하나님의 인도와 개입이 있었음을 알게 되신다면 이제 우리가 보여야 할 반응은 무엇일까요? 본문에 나타난 주인공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지금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기도를 받고 어머니에 의해 삼촌 집으로 보내어 집니다. 그의 형 에서가 야곱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지만 목숨을 보존하고 새 인생을 열기 위한 실낱같은 가능성에 인생을 걸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웠고 피곤했고 두려웠습니다. 그가 이렇게 홀로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가던 중 벧엘이라는 광야에서 밤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그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모습을 보고 이어서 사다리위에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때 소스라쳐 놀라 깨어 일어나며 고백한 말씀이 바로 16절 말씀이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그는 비로소 형에게 쫓겨 먼 길을 가고 있었던 그 피곤한 여행길에도 그리고 아무도 없는 외로운 빈들에서 한 밤을 지날 때에도 하나님이 거기 계셨던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그 아침 야곱이 깨어 일어나던 그 순간 그는 영적 방심에서 깨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신학자들은 이런 순간을 영적 각성의 순간이라고 부릅니다.오늘의 우리에게 이런 영적 각성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야곱은 두 가지 결단을 합니다.
2. 평생에 경배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첫째 결단으로 야곱은 이 빈들에서 지난 밤 베개 삼아 잠을 청했던 돌을 기념비로 기둥처럼 세우고 기름을 부은 다음 여기가 바로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고백합니다.일종의 예배 행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분을 경배하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진지한 예배 행위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저는 한해를 돌아보며 미래를 기다리는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금년 한해 나의 예배 행위가 온전한 것이었는가를 돌아보셨으면 합니다.온전한 예배 없이 쓰임 받는 생애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성공 없이 인생에 성공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들입니다.예배에서 은혜 받고, 예배에서 새 힘 얻고, 예배에서 비전보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비밀인 것입니다.예배 제대로 드리것 이것이 우리의 경건한 계획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십일조를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성경이 십일조나 헌물을 강조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헌금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따라하십시다. 헌금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 고후9:5에 보면 바울 사도가 마게도니아 교우들의 희생적인 헌금 행위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우리가 바라던 것 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헌금은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십분의 일도 드릴 수 없다면 성경은 그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건강과 능력, 일을 처리하는 지혜, 일이 가능한 환경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고, 주님께서 함께 하셨고,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신 것을 참으로 믿고 안다면 이제 그분께 약속을 지키는 일이 무슨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이제 말씀대로 사시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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