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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옵나니Ⅲ 삿13:15-20 +
구하옵나니Ⅲ 삿13:15-20 +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이 부흥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되기 이전에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변화시키기 이전에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먼저 불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맛보면 이 민족 변화됩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1. 먼저 참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부흥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되기 이전에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변화시키기 이전에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먼저 불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맛보면 이 민족 변화됩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예배가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 시간에 우리를 치유해 주십니다.
각각의 아픔이 있지 않습니까? 어루만져 주십니다. 치유가 됩니다. 단순한 설교시간, 찬양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시간입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를 통해서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회복되는 마노아 가정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살전 4장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룩하게 살라’거룩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분이나 완전한 분이나 한 점 흠이 없는 분이나 깨끗한 분에게만 사용되어지는 아주 독특한 단어입니다. 성결에 대한 최고도로 높인 말입니다. 이러한 거룩의 단어를 받으실만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거룩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하나님께만 사용되어지는 것이지 사람들에게나 어떠한 물건에 붙여지는 이름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과 교회를 지칭할 때에 거룩하다는 말을 썼을 뿐, 그 외에 어떤 것에도 거룩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거룩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한정되어서 쓰여지는 단어인데, 하나님은 이러한 거룩의 엄청난 단어를 우리들에게도 사용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심각한 죄인인데도 하나님은 거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룩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능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입니다. 이 세상은 지식이나 과학이나 돈이 능력이 됩니다. 정보기술이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한 나라의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 먼저 도달하기 위하여 많이 배워서 지식을 얻으려고 하고 있고, 돈을 많이 벌어서 능력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능력은 세상의 것에 있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능력은 거룩함에 있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구별되고 깨끗하고 거룩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거룩하여지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능력을 옷 입기 위하여 매 주일마다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옷 입게 됩니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봉헌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 성전에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3. 형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형제 사랑하며 살라’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귀중한 존재라는 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이고,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럼 성도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과 피의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생명으로 우리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값을 치르셨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만한 가치를 주시기위해 주님께서 그 값을 치른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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