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부분들을 다시 점검해 봅시다. 세상을 따라 살다 보니 심지어 하나님이 불편하고 거치장 스러울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양심 주머니를 만들어놓고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꺼내 습니다. 예배의 진정한 의미는 섬기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안다는 것이고 그러한 분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이며, 이때 그 예배는 섬기는 것입니다.오늘 저와 여러분이 주일을 맞아 이 자리에서 드리는 이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것을 또 달리 표현한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즉 예배란 하나님께 섬김을 드린다라고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문제는 예배란 하나님께 섬김을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받으려고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은혜를 받기 위함이라는 말은 듣기에 매우 그럴듯하게 보입니다.물론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하지만 그것 자체가 예배의 본질이 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예배의 주인공이 예배하는 자신이고 하나님은 나를 빛나게 해 주는 조연에 불과하다면 과연 그 예배가 참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어쩌면 우리는 예배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예배를 통해 주어지게 될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1. 잊지 마십시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깨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확신합니다. 21세기에 우리의 모든 관계가 지금 다 깨지고 있습니다.기계적인 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접근해야 됩니다. 인간은 지·정·의가 있습니다. 세 가지가 다 만족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만족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에!하나님 섬길 때 에도 마찬가지에요. 인격으로 하나님을 섬겨야지요. 지성을 다해서 감성을 다해서 의지를 다해서!그래야 관계가 형성됩니다. 우상에는 그것이 없잖아요. 우상 섬기는 것에 무슨 신학이 필요합니까? 감정이 필요해요?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날마다 기도해야 될 이유가 무엇이지요?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1년에 한 번 몰아서 해 버리는 것 아닙니다.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매일매일 나오셔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하나님 어찌할까요.' 하고 하나님 앞에 내 감정을 토해야 합니다. 기쁠 때에 찬양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인격적인 관계 아니에요? 슬플 때도 찾아와야지요. 관계는 그런 것입니다.어떨 때는 입술로 고백도 해야 됩니다.
2. 하나님의 관계를 깨는 것 중의 하나가 정숙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콰이어티즘이라고(정적주의 17세기 말의 신비주의적 종교 운동)이 사람은 되게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절대주권을 믿는 사람 중에 콰이어티즘에 빠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숙주의!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많습니다.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하신다.다 아신다.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 참 멋있어 보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요? 기계입니까? 앉아 기다리는 것인가요? 칼빈주의가 오도되었을 때에는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다 때가 되면 믿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이것이 콰이어티즘 정숙주의입니다.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이것은 무엇을 착각한 거지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지요?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헌신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단독 플레이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동역자라고 했잖아요.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고 같이 기뻐하시고 같이 눈물 흘리시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 우리가 모여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3. 또 한 가지 우상의 위험 중에 있는 것이 성숙주의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신학 가운데에 이런 것이 많은데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살아야 된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참 웃기는 이야기이지요. 우리는 성숙했기 때문에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린아이일 때에는 '붙들어 주십시오.'라고 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 크고 사춘기가 지나지 않았느냐, 이 나이에 하나님을 찾으면 되느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뜻을 가지고 우리가 '자율적인 인간', 그런 표현을 씁니다. 자율적으로 헌신해야 된다고 합니다. 이것도 맞는 것 같지만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지요. 초신자일 때는 '하나님 나 기도할 줄도 모릅니다. 하나도 모릅니다. 붙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과의 관계를 맺으십니다. 신앙적인 지식이 쌓여 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있잖아요. 그러면 수준 높은 충성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찌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겠습니까?' 죽을 때 까지 우리는 관계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관계, 관계! 그런데 관계를 깨는 최고의 대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 한마디 단어가 무엇이냐 하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오늘도 여러분의 이 예배가 우리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또 하나님과 의기투합되는 것 있잖아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 그것을 흐뭇해하시면서 네가 어떻게 내 뜻을 잘 알았냐고 하시는 그런 관계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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