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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는 첫 계명Ⅱ 엡6:1-4절
약속이 있는 첫 계명Ⅱ 엡6:1-4절 +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합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란 무슨 뜻입니까? 2절 보시겠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무슨 말입니까? 부모 공경하는 자에게 주어진 복이 하나님의 약속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성경에 있습니다. 엡6:3“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한마디로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하고 만복을 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요 계명 안에 있는 비밀입니다.
부모 공경하면 네가 잘된다고 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조지 워싱턴입니다. 워싱턴은 뱃사람으로 평생을 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선원이 되기 위해 배에 짐을 실었는데 어머니가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워싱턴은 따라 나온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배에서 내 짐을 가져와라. 어머니를 슬프게 하면서까지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고맙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성경 말씀처럼 네 장래에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그 후 워싱톤은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신5:16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는 뜻은 잘된다. 형통하다. 절로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어머니는 젖만 먹이며 키우지 않습니다. 탕자 어거스틴이 목메어 애원하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이탈리아로 도망쳤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날 이후로 밤마다 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드디어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 다란 말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무디의 아버지는 40세에 별세하고, 유복자 쌍동이를 합해서 아홉 자녀를 키운 무디의 어머니는, 밤마다 벽난로 앞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자녀들이 잠든 후에는 밤을 새워 울며 기도하던 어머니였습니다. 아침에는 햇살처럼 밝고 맑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했습니다.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를 성자처럼 믿음의 자녀로 키워 감리교의 어머니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분들만이 존경받을 분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요, 우리들의 어버이들도 희망을 낳고 희망을 기르느라 온갖 심신의 기력을 다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버이의 은혜를 안다면 자연스럽게 어버이를 공경하고 기쁘시게 해드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틴 루터의 "대요리문답"에 보면 성경적으로 네 가지 부모를 말합니다. 첫째, 나를 낳아주신 육신의 부모입니다. 육신 부모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전적인 부모님의 은혜로 살 수 있었고, 부모님의 품안에서 부모님의 젖을 먹고. 기도를 먹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감사하게 될 때에 영적인 은혜도 바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연약할 때에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아무 것도 행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생명의 젖을 먹여 나를 양육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구속의 진리를 부모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기독교의 효는 첫 번째 그 이유에서 차원이 다르고, 두 번째는 그 방법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신앙적인 효도방법의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상이나 차려드리면 되는 그런 효도가 아닙니다. 열 가지 계명 중에 아홉 가지 계명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수 있는 계명입니다. 그러나 제5계명만큼 어느 날 문득 내 곁을 떠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홉 가지 계명을 내가 범하고 잘못 감당했다고 할지라도 후회할 수 있습니다. 돌이킬 수 있습니다. 새롭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5계명만큼은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송강 정철 선생의 시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한번 가신 뒤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생전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신앙적인 효도 방법의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구원받도록 해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생전에 섬기기를 잘한다 한들 영혼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다고 하면 제대로 효도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지요. 부모님 생전에 예수 믿게 한 자녀는 최상의 효도를 감당한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세상에서 진수성찬으로 대접하고 능라주단으로 몸에 감아드리고 연락으로 즐겁게 해 드렸다 할지라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여 영원한 멸망을 받는 부모가 되었다면 이 어찌 효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묻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분들이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 옆자리에 앉아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이라도 그분의 생애에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고 하면 그들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금식하며 기도해 보셨습니까?
50억 인구가 지옥에 가도 내 부모님만큼 천국에 모신다 각오하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될 일입니다. 남들은 이억만리 오지까지 가서 선교 하는데 나는 내 가정, 내 가족이라도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 육신 공경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영혼 공경만 하겠습니까? 순교적인 각오를 가지고 부모님에게 예수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최고의 효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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