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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사14:12-17 +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사14:12-17 +
영적인 세계에서도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단은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강하게 드러나면 사단의 추함과 속임수가 그들의 미혹함이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사실 예수님과 사단의 싸움은 성립되지 않죠. 예수께서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면 사단은 자동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강하게 드러나면 죽음의 세력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능력이 강하면 병자가 치료받습니다. 소망이 강하면 절망이 물러갑니다. 사랑이 강하면 미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용서를 강하게 드러내면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기쁨을 강하게 드러내면 슬픔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과 어두움의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이 말씀은 어둠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속성을 강하게 드러내면 낼수록 그분에게 저항하려고 했던 모든 세력들은 물러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강력하게 생명력을 드러내면 우리 앞에 와 있는 부정적인 세력에 눌린 사람들은 그 순간 치료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미운 사람이 있을수록 사랑을 강력하게 드러내야 하며. 죽어가는 사람일수록 생명을 강력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1. 사단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하여 도전하였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사실에 탐욕이 생겨 사단은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도전하였습니다. 사14:13-14“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자연을 다스릴 권리, 관리할 권리가 있는 것이지, 함께 창조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동역자라는 것은 창조권을 준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전도권을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창조권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이것을 건드리고 나온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3절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도전하는 내용인데.‘지극히 높은 분과 비기리라’이것이 사단이 가지는 특성입니다. 사단은 피조물로서 스스로를 신격화하였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였습니다. 이사야 14:13 이하에‘나도 하나님과 비길 수 있다’는 것은 자기가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교만하게 말한 것입니다.
2. 사단은 안식일을 범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인해 안식이 깨어지면서 사단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 4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라’고 했는데. 율법은 미완성의 법이기 때문에 예수가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셨습니다. 안식일이 율법이라는 말은 안식일은 율법에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육체는 인간의 의지를 갖고 쉬는 것이요 안식이라는 것은 노동도 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근심걱정을 그냥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후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물론 영적 부요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 땅위에서의 물질문제도 함께 다루신 말씀입니다. 안식이 오면 염려가 없습니다. 필요한 게 안온다고 생각하고 미리부터 고민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믿는 자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그가 응답하십니다. 여러분 삶에 불안과 초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안식하는 자가 아닙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다니며 사단은 안식이 없는 게 그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근심과 걱정이 그치지 않으면 벌써 마귀의 장난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기만 하면 해결되는데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은 있어도 예수 이름을 사용할 시간은 없게 만듭니다.
3.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서 마귀를 물리쳐야한다.
뱀이 혀를 사용해서 하는 말은 끝없는 파괴뿐입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나라를 파괴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혀를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 기쁨이 창조되고, 소망이 창조되고, 부요와 능력이 창조됩니다. 그러나 이 혀를 마귀에게 맡기는 순간 파괴와 죽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내 혀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귀의 무기에 대하여 살펴보면. 무기란 죽이는 것을 말한데.
여기서 사망과 죽음은 의미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육체가 끝나는 것을 의미하고, 사망이라는 것은 영적 저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불신자의 육체의 죽음은 영원한 저주의 고통에 떨어지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의 육체를 죽일 뿐만 아니라 영혼도 계속 고통을 느끼도록 끌고 가는 것이다. 영적인 저주는 육체는 살아 있어도 이 사망을 지금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합니다.‘살았다 하나 죽은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영은 사망 권세를 잡은 자에게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마귀가 가져다주는 죄와 사망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인간에게 죄를 없애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권세를 빼앗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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