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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삼하24:10-16 +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삼하24:10-16 +
여러분 원리 없는 삶 원리 없는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원리 없는 실천이 가능하다는 완전한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원리가 없는거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편리하게도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리대로 자기 편리대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 말만하지 않을 뿐이지. 세속적인 원리가 있으면 세속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인과응보의 원리가 있으면 인과응보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말씀의 원리가 있으며 말씀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원리와 삶은 분리할 수 없는 같이 가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엡5:21절 보시면.“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그랬습니다. 엡5:21절의 내용은 앞부분의 서술이자 뒤에 나오는 성도의 삶 전체에 대한 원리의 선언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애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사도 바울이 이 구절을 넣은 것은 생각 없이 쓴 것이 아닙니다. 덧붙이는 추임새가 아닙니다. 성도의 삶에 대원칙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존재냐. 피차 복종하는 것을 특징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이것에 대한 선언입니다. '피차 복종하는 존재' 이 대원칙을 밝히고 난 다음에 그 원칙대로 살아가는 적용들이 나와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 종과 상전과의 관계 이렇게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애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게 대원칙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적용을합니다.
1. 그리스도를 경애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원리가 에베소서 5장 21절의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경애함으로 이 안에 다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뭐냐. 모든 개혁이나 변화는 그리스도를 경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다 실패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애함으로 시작하지 아니한 모든 것들은 기대할게 하나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드리는 성도 가운데 혹시 부부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깨진 분이 있습니까? 둘만이 얼굴 쳐다보고 화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애함으로 풀어야 됩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으로 풀어야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려 버리면 나머지 모든 관계가 다 깨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녀들과 부모가 원수지간이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풀어야 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애함으로 여기서부터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본문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공하는 법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반면에 철저하게 망하는 법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는 법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어야 되겠지만 철저하게 망하는 법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훨씬 더 강하게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교만하면 망합니다.
교만은 마귀적인 죄입니다. 마귀라는 것이 어떤 존재였습니까? 천사였습니다. 천사에게 교만이 들어가니까 마귀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라도, 아무리 성자 같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교만이 들어가면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응징을 받습니다. 급격하게 망합니다. 다른 모든 죄악들은 유예기간이 있는데 교만만은 즉결심판입니다. 웃시아왕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을 보십시오. 헤롯왕을 보십시오. 급격하게 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교만을 보게 됩니다. 승승장구하는 승리 이후에 마지막 장면이 어떻습니까? 교만함을 가지고 인구수를 세고 있습니다. 인구조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고자하는 얘기는 무엇이냐 하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삼하24:1“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자 하나님의 징계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본 구절에서는 명확히 하나님의 진노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이스라엘의 범죄는 삼하15:7-12‘압살롬의 난’과‘세바의 난’에서 보여 주었던 삼하20:1-2 마침 거기에 세바라는 이름의 벨리알의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베냐민 족속 비그리의 아들이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에게는 다윗 안에서 얻을 몫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 안에서 얻을 상속 재산이 없도다. 오 이스라엘아,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각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으나 유다 사람들은 요르단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자기들의 왕에게 굳게 붙으니라 저들의 반역적인 행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그때에 이스라엘의 다수는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 왕을 반역하고, 그를 대적하여 압살롬과 세바를 좇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반역죄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구조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치세 가운데 얼마나 융성함이 있는가! 내가 얼마나 위대한 왕인가, 내가 얼마나 쓸 만한 인물인가, 내가 얼마나 멋진 시대의 영웅이었는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인구조사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히스기야왕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미암아 18만5천 명의 앗수르의 군대를 멸하고 죽을병에 걸렸다가 벽을 향한 기도를 통해서 15년의 생명의 연장을 받습니다. 하지만 결국 교만하여 망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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