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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헛되도다. 전2:17-23 +
이것도 헛되도다. 전2:17-23 +
우리는 추석 명절을 지내면서 고향을 찾아가기도 하고 조상의 무덤을 찾아서 성묘를 하기도 합니다. 추석 명절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는 감회와 감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인생의 허무와 무상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든지 생존해 계신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윗은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한 시를 우리에게 썼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39:4에 사람이 지혜롭게 살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먼저 종말을 알아야 합니다.
시39:4“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종말은 죽는 날입니다. 인생이 끝나는 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입니다. 반드시 사람은 죽는 날이 옵니다. 자기 죽음을 알고 산다는 것은 놀라운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죽음을 압니다. “언젠가 나는 이 세상을 떠난다.” 이것을 알게 되면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둘째로 자기 나이를 알아야 합니다. ‘연한의 어떠함’은 나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살 것인지 알려 주십시오. 나의 사는 날을 알려주소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는 날은 짧습니다. 얼마쯤 살았으며 또 얼마나 살 것인가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사는 날을 헤아리게 됩니다.
셋째는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연약함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가를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다윗은 시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시39:5-6절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림자 같은 것이고 우리의 사는 날은 한 뼘 짧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바람처럼 사라지는 세월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로 인간의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린 사람입니다. 그는 눈으로 본 것을 다 가졌으며, 입으로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었으며, 몸에 입고 싶은 옷은 다 입어봤습니다. 그가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졌습니다. 인생으로서 그의 영화는 전무후무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생의 향락을 누려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 말은 전1:2-4“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인생은 사는 날이 짧습니다. 덧없이 갈 뿐입니다. 그래서 옛 시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내 청춘 누구 주고 뉘 백발 가져온고 백발이 오고가는 길 알았던들 막을 것을 알고도 못 막는 길이니 그를 서러워하노라.”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우리 인생의 한 때 아름다움은 들의 꽃처럼 시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실감합니다. 한 때 아름다웠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쉬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람처럼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돈이 가지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돈으로 세계일주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천국은 못 갑니다.
3.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만족시킨 것이 이 세상에 있던가요?
터진 웅덩이는 만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심령이 터졌습니다. 죄로 터졌습니다. 욕심으로 터졌습니다.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집어넣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파스칼은 “우리 중심에 한 공백을 두었나니 그 공백에 하나님이 계실 때까지 인간은 만족할 수가 없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중심의 한 공백은 하나님이 앉을 자리입니다. 아무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공허할 뿐입니다. 주 안에서 예수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행복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는 은혜로 만족해야 합니다. 살아도 예수 안에서 살고, 죽어도 예수 안에서 죽고, 먹어도 예수요, 잠을 자도 예수요,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만 해도 내 가슴이 하늘로 채워지고 내가 길을 걸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만이 이 땅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위해서 땀 흘려 보았느냐, 마음을 바쳤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슨 일로 최선을 다했느냐?” 혹시 한 번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한 맺혀 울던 때는 있었겠죠. 서러워 울었던 때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격해서 가슴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쏟아 바쳐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내가 죽고 싶은 감동이 오는 때가 있습니까? ‘내가 순교해야지’ 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때가 있습니까? 날마다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그럴 때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바람을 잡아 흔들리는 사람되지 말고 내 속에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 그 바람으로 살고 그 바람으로 능력을 얻어 주께로 나아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되시길 바랍니다.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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