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뜨거운 날 태양빛 아래서 흘린 농부들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종이 한 장을 보면서도 열대 우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때 생태적 감수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브라질 농부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하고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으면서 유전 냄새를 맡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느끼면 그런 사람을 보고 ‘생태적 감수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한 가지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감수성’은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느끼는 감각,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예민하게 느끼는 감도를 ‘영적 감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마시는 공기,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사람이 있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똑같이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도 하나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추수감사절을 맞이했는데 어떤 이는 감사함을 깨닫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영국의 속담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매년 드려지는 추수감사절, 이 절기가 단순히 헌금 한 번 더 내는 절기, 그야말로 말로만의 감사절기가 되고 있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분은 “현대인이 농사도 짓지 않는데 왜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하는가?”하면서 추수감사절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그러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직업이 1차 산업에서 2차 3차 산업으로 바뀌어 일터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농업에서 공업으로, 또는 서비스업으로 직종이 바뀌었을 뿐이지 일하여 소득을 얻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도 추수감사절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셨나요?
똑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어떤 분의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것이고 어떤 분의 감사는 주님께 감동이 없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벽에다 던지는 공처럼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 자신을 평화롭게 합니다.”
행복과 감사는 같은 감정입니다. 행복하면 감사하고 감사하면 행복합니다.그러므로 정말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까닭은 감사할 줄 몰라서 입니다. 감사할 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없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할 일만 많아서 자신의 삶이 늘 우울하고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할 일이 없고 원망할 일만 많아서 우리의 삶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고 늘 우울한 까닭은 우리가 감사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일까요? 우리들이 영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입니다.어린 아이들은 '감사'라는 감정을 갖기 어렵습니다. '감사'는 철이 들어야만 생기는 매우 성숙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철이 들어야만 사람들은 비로소 감사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숙과 미숙함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은 감사입니다. 감사를 알면 성숙한 것이고 감사를 모르면 미숙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미숙한 까닭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기 때문입니다.성경은 약1:15 죄의 뿌리를 욕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욕심과 감사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욕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감사가 어려워집니다.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감사가 쉬워집니다.
3.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감사가 쉬워집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를 잊고 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크기 때문에 만족이 없고 만족이 없기 때문에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된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 땅에서도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놓치고 사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와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유는 욕심이 클 뿐 아니라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욕심 부려야 할 것을 욕심 부리지 않고 쓸데없는 것과 하찮은 것을 늘 욕심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귀한 것과 하찮은 것이 있을 때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에게 하찮은 것보다 귀한 것은 먼저 그리고 많이 주십니다.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귀한 것을 모르고 하찮은 것만 압니다. 그래서 귀한 것은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하찮은 것을 주시지 않으신 것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감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요3:3에“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가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음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면 세상 나라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가장 고상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하찮은 세상의 가치가 우스워 보인다는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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