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시편 131편 서두에도 다윗의 시‘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사실 시120편부터 134편까지가 소위 순례자의 노래라고 일컬어지는 시들입니다. 아마도 오늘의 시편은 명절을 맞이하며 순례의 길을 떠난 순례자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달하여 그들이 누리게 될 평화를 갈망하며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외로운 영혼들이 찾는 참으로 고요한 영혼의 평화 그 비밀의 처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고요한 영혼의 평화가 갈망되십니까? 그러면 이 시편에서 그 비밀을 발견하십시오. 고요한 영혼의 평화를 경험하는 비밀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헛된 욕심을 버리셔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영혼이 평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일까요?욕심입니다. 이 측면에서 보면 불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불가의 교훈과의 명백한 차별성은 기독교는 모든 욕심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성경은 자주 거룩한 욕심, 선한 욕심 그리고 의로운 욕심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강조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사람들이 새로운 의욕을 갖고 산업을 발전시키고 문화를 꽃피워 온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성경이 이런 우리의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욕심조차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에도 주목해야 합니다.우리의 욕망이 아무리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것이라 해도 그것이 경계선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욕심은 너무도 쉽게 거룩한 욕심이 추한 욕심으로, 선한 욕심이 악한 욕심으로, 의로운 욕심이 불의한 욕심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인의 지혜롭고 승리로운 삶의 가장 중요한 연습이 바로 ‘경계선 긋기’라고 지적합니다.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편기자가 지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좋은 일이라 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으나 그것이 분명히 거룩한 일이고 좋은 일이었음에도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때 요즘 말로 하면 오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거절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하고 다만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일까지 단순히 자기 명예욕으로 시도하는 욕심그것이 바로 헛된 욕심의 정체인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다 보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주님의 특별한 도우심을 체험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참으로 평안하려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닌 주님의 임재가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그분이 이 지상에서 육체적으로 제자들의 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주신 약속이 무엇이었습니까? 마태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여러분 생활고로 어렵습니까?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떳떳하십시오. 돈 때문에 울고 웃지 마시고 주님의 임재가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불투명한 미래로 우울하십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미래를 축복하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하나님의임재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지금에 집중해야 합니다. 저는 릭 워렌 목사님의 저서인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정하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그러나 한 가지 여기에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목적 못지않게 과정도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어떤 사람들은 내일의 목적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우리가 미래에 이루게 될 결과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만일 이런 사람들이 그 결과를 이루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라고 해야 할까요? 성공리라고 해야 할까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돈 많이 벌어서 하나님 일을 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벌다 죽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실패라고 해야 할까요? 성공리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은 성경의 통전적인 가르침은 아닙니다. 성경은 내일 못지않게 오늘도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선한일입니다. 고후6:2“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가르칩니다. 또 마6: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가르치십니다.
내일 우리가 성취할 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위해 오늘 우리가 땀 흘려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인하여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 땀 흘리는 일이 선한일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기자는 우리가‘지금 여기서부터’ 여호와를 바라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본문 3절입니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오늘 지금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은 내일도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할 수 있을 것이고 미래에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이런 사람의 오늘을 우리는 ‘영원한 오늘’ 혹은 ‘영원한 현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오늘 지금을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로 알고 기뻐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지금부터 영원까지’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그러나 지나치게 인생을 목적 중심적으로만 혹은 결과 지향적으로 살다보면 오늘의 평화, 오늘의 기쁨, 오늘의 행복을 상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헛된 욕심일수 있다는 것입니다. 헛된 욕심을 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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