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기자는 인생의 고통해 대해서 본문 시편107편을 통해 한 4가지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4절에 인생의 고통은 ‘사막에서의 방황’과 같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10절에‘어둠 속에서 쇠사슬에 매임’과 같다. 셋째는, 18절‘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한 아사직전의 모습’과 같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상징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대답은 인생의 고통은 ‘바다에서 광풍을 만남’과 같다는 것입니다.25절입니다.“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런 폭풍과 파도가 두려워 출항 그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그러나 선척은 항구에 매여 있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은 아닙니다. 배가 항구를 출항한다는 것은 폭풍과 파도를 만나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선척은 폭풍과 파도 속에서 마침내 임무를 수행하고 소원의 항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생의 바다에서 갑작스런 광풍을 만날 때 혹은 파도를 만날 때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입니까?본문 시편기자의 대답을 빌리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하필이면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야 할까요? 파도의 원인은 다양할 수가 있습니다.파도의 높이와 속도는 바람의 속도 혹은 지속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풍속이 클수록 파도는 커집니다. 바람에 의해 형성될 수 있는 최고 파고는 30m이상인데, 전문가에 의해 측정된 최고의 파고는 34m정도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파도는 지구 자체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데 오늘 시편의 기자는 이런 자연적인 원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25절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 현상의 배후에서 이 모든 것을 허용하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리고 진실로 오늘 우리가 인생의 바다에서 경험하는 모든 고통이 하나님의 허락하신 섭리에 의한 것이라면 바로 그분 ‘섭리의 주님’에게 나아와 부르짖음이 당연한 해결책이 아니겠습니까?오늘의 본문도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 삶에 광풍을 만나셨다고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그분 앞에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조용한 상황은 조용한 기도를 필요로 하지만 특별한 상황은 특별한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그렇습니다. 지금의 내 삶의 정황이 비상한 상황이라면 비상하게 기도하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나는 네게 응답하겠고”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광풍이 곧 잔잔해 지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그렇습니다. 우리가 광풍 속에 휘말릴 때 우리는 그 고통이 끝나지 않을 고통인 것처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에 시작이 있는 것처럼 어떤 고통에도 끝이 있습니다.특별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고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곧 소멸될 고통입니다.지난 며칠 전 강원도에 눈 폭풍이 휘몰아치던 밤, 이재민들에게 그 밤은 끝나지 않을 밤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 이 땅에서 발행되는 조간신문 대부분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장식되고 있었습니다.“강원도 눈 폭풍 소멸하다”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를 고통하게 한 문제 그 자체는 그대로 상당히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버티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그런 경우에라도 참으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했다면 우리 마음속에서 이미 광풍은 소멸되고 잔잔한 고요가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혼의 고요를 간직한 사람들을 더 이상 태풍이나 파도가 흔들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 숨이 곳 넘어가 죽으려고 할 때 우리가 광풍중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기대해도 좋을 일은 소원의 항구에 곧 도착하리라는 것입니다.우리는 우리의 항해 중 풍랑을 만나면 그 만큼 항해는 늦어 질 것이라는 통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사실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우리는 파도를 타고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광풍 속에서 벗어나 목적지로 뱃머리를 돌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그 방법은 하나입니다. 기도를 통해 목적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풍중에 여호와께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하면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우리 모두는 마침내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본문 시편 107편은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의 묘사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런 고통에 대한 묘사는 이런 고통에서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고통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매 단락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8절,15절,21절,31절이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감지하셨습니까?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21세기 과학의 세기에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의 바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혹시 광풍과 파도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럼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 주님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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