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시면 바울 사도는 7절에서 내 육체에 가시가 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가 있다. 이 가시가 무엇이 얻는가에 대해서 신학자들의 이견이 여러 이설들이 분분합니다. 가장 많이 재기되는 설은 소위 안질설입니다, 갈라디아서 4:14-15절 보시겠습니다.“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그리고 그 다음절에 보시면 나를 사랑하는 너희들이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서 나에게 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바울이 아마도 안질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내가 바울 선생님에게 눈을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겠느냐 라는 그런 추측입니다. 그런가 하면 뭐 안질 가지고 너희들의 시험꺼리가 내가 되고 있다.바울이 그렇게 말했겠느냐 이건 안질 정도가 아니라 당시에 사람들이 가장 부끄러워하던 질병, 간질이 바울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간질설이라고 그럽니다. 안질이냐 간질이냐 그래서 신학자들이 토론을 벌입니다. 아마 간질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너희의 시험꺼리를 내가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고백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정 아무도 모릅니다.중요한 것은 바울이 자기를 찌르는 육체의 가시를 갖게 되었을 때 이 가시를 어떻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첫째로 가시가 옮겨지도록 기도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자기를 찌르는 육체의 가시를 갖게 되었을 때 이 가시를 어떻게 했느냐는 것입니다.물론 바울이 이 가시가 옮겨지도록, 없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세 번만 기도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내가 세 차례에 걸쳐서 이것을 기도했지만 그러나 육체의 가시가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일단 중요한 것은 바울이 그 가시가 옮겨지도록, 떠나도록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 아니죠? 당연히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라는 가장 커다란 인생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고 주님도 세 번 진지하게 기도하셨던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무엇보다 기도하라고 우리를 초청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로 다루지 못할 고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어떤 고난도 옮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경의 분명한 약속입니다.
둘째로 옮겨지지 않는 가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십시요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경험하는 고난들 가운데는 적지 않게 우리들 인생의장에서 아주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그런 고난들이 있습니다.기도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고난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자연히 우리는 기도하면서 이렇게 주앞에 물을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 왜 그렇습니까? 도대체 왜 이 고난이 떠나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도대체 이 고난을 오랫동안 이렇게 내 삶의 장에 허용하셔서 제가 계속 이 가시에 찔리도록 허용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저는 정직하고 진지하게 이 질문을 묻는 사람마다 하나님 앞에 동일한 대답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주님 앞에 엎드려 또 물을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 도대체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7절 보시면“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바울은 자기 육체의 가시를 무어라고 설명합니까?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그것이 무어라고 합니까?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물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러면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솃째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7절에 어떻게 시작합니까?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를 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세계를 경험한 사람입니다.우리가 본문직전에 있는 이 고린도후서 12장1절부터 6절까지를 보면은 바울의 신비한 체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자기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몸을 떠나는 경험을 합니다. 일종의 신비체험을 합니다.셋째 하늘나라에 끌려갔다 하나님의 낙원, 저 대기권 바깥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살면서 그가 천국경험을 한 것입니다.아주 신비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그런데 바울사도가 기도하면서 깨달았든 것이 뭐냐 하면 왜 하나님이 나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용하셨을까? 하나님이 나를 전도하라고 부르시고 세계를 뛰어다니면서 이 시대에 복음화의 거룩한 사명을 나에게 맡겨주셨다면 좀 건강하게 하시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러한 떠나지 않는 육체의 고통을 나에게 주셨을까? 기도하다가 아~왜 이러한 고통을 주셨을까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하 아~ 이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 고통을 허용하셨구나, 아~내가 건강까지 하면 내가 교만해질 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그래서 기도하라고 바로 육체의 가시를 내 인생 속에 허용하셨다,그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 그 삶은 건강한 삶보다도 훨씬 더 유익한 삶이란 것을 바울 사도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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