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욥바라는 항구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요나는 선가를 주고 하나님의 명령에 정 반대쪽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배 삯을 지불하고 올라탔습니다.그리고는 배 밑창으로 내려가 아예 잠을 청했습니다. 욥바 항구가 오늘 우리에게 상징하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내 뜻을 내세우며 다른 길로 들어서려는 기로에 선 자리를 의미합니다.오늘도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이것이 믿는 사람들에게 항상 갈등을 느끼는 문제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의 생각이 더 합리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은 당장에 내게 필요한 경우이고,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가기 싫으면 아무데도 가지 말고 가만히 있지 왜 떠납니까? 거기에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3절을 보면 두 번이나 똑 같은 말씀이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그 당시에 유대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 나라에만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고 그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지 다른 나라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요나가 집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계속 독촉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으로 도망갈 궁리를 하다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다시스로 도망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니느웨는 지금의 이라크, 중동 아시아 쪽에 있습니다. 반면 다시스는 그 위치를 정확하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스페인에 있는 어느 항구 도시로 보고 있습니다. 중앙 아시아와 스페인은 완전히 동과서, 끝과 끝입니다.반대방향으로 도망가기로 작정하고 욥바로 내려와서 거기서 배를 타고 드디어 줄행랑을 치는 것입니다.이스라엘 나라만 벗어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고,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고, 하나님의 독촉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참 현명하죠. 아니면 바보스러운가요?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이천 팔백 여 년 전에 있었던 요나의 이야기가 오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이 말씀,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명령하시는 것인가?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 우리가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될 시간입니다. 제가 볼 때 요나가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우리는 그와 같이 명령 받는 것을 일컬어서 소명 혹은 “콜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도 요나와 같은 소명이 있습니까? 흔히들 소명 이야기를 하면 자기와 관계없는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정신 차리고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요나만 보냄을 받았습니까? 요나만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니느웨로 가게 되어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요나만 소명자입니까? 똑같이 우리 모두가 소명자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으로부터 해야 할 일을 명령 받은 사람이요 순종해야 될 의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이 명심하셔야 됩니다. 요나처럼 욥바에 서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소명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은 조금 이해하기 쉽게 하나는 일차적인 소명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이차적인 소명이라고 이름을 붙여 봅시다. 그럼 일차적인 소명이 무엇입니까? 구원이 소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선택 받은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구원 자체가 소명입니다. 무엇 하려고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한번 물어보십시오. 천당 가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구별하여 미리 구원해서 세상에 살게 하신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네 맞습니다. 우리를 구원한 그 구원 안에 하나님의 명령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이 소명입니다. 이 가운데 구원 받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구원 받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왜 내가 소명자라는 것은 모르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먼저 구원한 이유가 우리의 구원 안에 들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이름이 소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주셨습니다.'그리스도인, 성도, 증인, 예수의 제자'라는 아주 아름다운 이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 자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증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 이름 자체가 이미 소명자로서의 신분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제자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서 한평생 사셨습니까?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제자란 말입니다. 그렇다면은 예수의 제자라는 그 이름 자체가 소명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 자체가 소명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서 내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시시한 것이든 가치 있는 것이든 남이 선호하는 것이든 남이 싫어하는 것이든 관계없이 우리가 삶을 통해서 경험하는 모든 생활의 전체는 거룩한 제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드리는 거룩한 제사가 내 삶이라고 하면 내 삶 자체가 벌써 소명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꼭 기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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