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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찬송할지로다 시편 107:1-9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편 107:1-9 +
2차 대전이 종전된 후에 연합군이 독일의 감옥소, 수용소를 점령하고 감옥소를 돌아보며 사람들이 죽어가던 가스실을 보고 나오던 한 연합군 병사가 이런 외마디 비명을 질렀는데 그 것이 전 세계에 뉴스로 보도되었습니다. 이곳이 지옥이다!
그리고 다시 몇 군데를 더 돌아 나오다가 그의 입에서 또 다른 한 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 그 말은 이것은 믿을 수가 없다며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키고 다른 병사들이 그가 가리키고 있는 벽을 보았습니다. 그 벽에는 여러 가지 낙서가 휘갈겨 있었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바로 그 문구를 보고 이 병사는 이것은 믿을 수가 없다는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대한 최선의 신앙의 고백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벨로니아 포로에서 돌아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에서 똑같은 고백을 발견합니다. 시편107:1절을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이유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실한 사랑,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시편 107편을 보면 똑같은 찬양의 고백 시가 네 번 반복됩니다. 이 반복되는 네 개의 문장이 시편 107편을 네 개의 단락으로, 문단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8절, 15절, 21절, 31절인데 똑 같은 문장입니다.
8절 한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똑같은 말이 15절에, 21절에, 31절에 반복됩니다. 여기서 네 개의 상황은 환경입니다. 이것은 모두 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은 광야에서 방황할 때였습니다. 광야에서 방황할 때. 4 절부터 7절까지. 4절에 보시면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그들이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고 한 지점에서 또 다른 지점을 향해서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을 여기서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방황 자체가 아픔이었습니다. 고통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내가 할일은 아마 하나밖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알기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6절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다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드디어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7절 의 고백처럼, 7~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 그 방황의 고통, 방황의 속에서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이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어느 날 갑자 기 내 인생이 깊은 궁지 속에 빠져서 꼼짝 달싹 할 수 없이 내가 온몸이 붙들어 사슬에 메인 것 같은 인생의 구속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저앉고 말지요 어쩔수가 없어, 꼼짝 달싹할 수가 없어요. 쇠사슬이 나를 얽어매고 있는 그런 인생의 궁지 속에 빠져 버리는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10절의 체험이 아마도 그런 체험을 대표하는 고백일 것입니다. 1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였다고 말합니다. 그냥 사슬이 아니라 쇠사슬! 내 힘으로는 깰 수 없는, 내 노력으로 는 깨뜨릴 수 없는,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강력한 사슬이 나를 죄고 있는 이 삶의 곤고함, 이 아픔, 이 압력, 속에서 인생이 주저앉아 버리는 체험을 하신 적이 없으신지요?
그러나 점차 나는 이 사슬의 책임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내 죄가 만들어 낸 사슬,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사슬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든 내 어리석은 결정이, 내 과오가, 내 죄가, 내 잘못된 부도덕한 결정이 나 스스로를 얽어매었던 사슬인 것을 우리가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의 체험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1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으로 인해서 내가 만든 이 죄의 사슬이 나에게 이 속박을 가져다주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불순종의 사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습관의 중독 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그것은 알코올의 중독일 수가 있고 어떤 사람의 그것은 도박의 중독일수도 있습니다. 뭔가 사슬이 나를 얽어매어서 내 삶을 패괴하게 만들고 내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이 경험 속에서 살아왔던 속박의 세월을 돌이켜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사슬에 매인 채 사슬을 깰 수 없는 내 무력을 느끼면서 나는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어느 한순간 나에게 찾아온 설명할 수 없었던 놀라운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편기자처럼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할렐루야!
14-1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할렐루야! 속박의 사슬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속박의 사슬 속에서 체험된 하나님의 선하심! 나를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그의 기이한 일을 인하여 하나님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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