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양대 산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그의 부활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뿐만 아니라.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특히 부활 장으로 알려진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도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말했습니다(고전15:13-14).
뿐만 아니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모든 사람가운데 예수 믿는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고전15:16-19에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죄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믿고 감사할지라도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십자가를 뛰어넘어 부활까지 가야 온전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말처럼 부활이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사두개인) 하나님은 이미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잠자는 자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주님의 영광된 몸의 형체와 같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다면은 거의 예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 한다고 부활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위해 천국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했다고 다 부활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은 사실은 믿으면서도 부활에 대해서는 잊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진정 부활의 신앙, 곧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점검해 보시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항상 부활의 신앙으로 깨어 있는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 말씀은 우리가 입으로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할지라도 그 믿음에 대한 행함이 없다면 그 고백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약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허탄한 사람이란 의학 용어로“정신 나간 사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뜻합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입술로는 고백하면서 그에 대한 행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따로 행함 따로가 아니라 반드시 행함과 함께하고,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비로소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했음에도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 즉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할지라도 부활을 믿는 믿음에 대한 행위가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은 믿음은 곧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면 반드시 그 믿음에 대한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함에 제한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옆 사람을 안아 보세요. 여러분의 팔로 몇 사람까지 안을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도 팔이 짧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왜 그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을까요? 생기는 퓨뉴마 하나님의 신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두 사람 정도 안는 것도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면 여러분은 우리 모두를 가슴에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민족을 가슴에 안을 수 있습니다 열방을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부활절을 통하여 우리 모든 교우들이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때처럼 하나님의 생기가 내 안에 충만해지는 부활의 사건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은 회복입니다. 부활은 단절을 이음표로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 죄의 결과는 죽음이며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단절은 쓰라림, 슬픔, 비극 자체입니다.이 단절 앞에 모든 인생은 가슴을 찢는 아픔과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경험합니다. 고뇌와 불안과 소외와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은 단절된 것을 이어놓는 이음표였습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모든 고뇌와 절망을 환희와 희망으로 이어놓은 이음표였습니다. 부활은 마침표를 쉼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생들은 죽음을 마침표로 여기고“죽으면 그만이야”합니다. 이 말은 죽음 앞에 인간들은 무기력하고 무능함을 그대로 폭로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마침표를 쉼표로, 끝을 시작으로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습니다.“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길이 막혔어도, 실패했어도, 앞길이 망망해도, 부활의 주님을 믿고 바라보며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오늘날의 교회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날, 무덤에 향품을 가지고 찾아갔던, 여인들과 같은, 교인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골방에 문을 잠그고 있었지만 이 여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결과는 부활하신주님을 첫 번째로 만나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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