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능력을 믿는 여러분 믿음의 부유함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고 일하기를 위하여 힘쓰고 노력하며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생활을 믿음으로 하고,직장 생활을 믿음으로 하고,교회 생활을 믿음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그렇게 되면 믿음으로 한 모든 일에 구원과 부활의 역사가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믿음의 부요한 자들이 되어 구원과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죽으셨을 때에는 제자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버렸습니다.그러나 부활하신 것을 사실로 알게 되자 제자들의 인생은 180도 방향이 전환되었습니다.절망이 희망으로 바꾸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슬픔이 기쁨으로 바꾸어졌습니다.의심이 확신으로 바꾸어졌습니다.옹색하던 사람들이 너그러운 사람으로, 겁쟁이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로 바꾸어졌습니다. 생각도 바뀌었고, 행동도 바뀌었고, 가치관도, 모든 것들이 다 바뀌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사실이 저들의 모든 것들을 다 변화시켜버렸던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런던 타임즈가 설문조사를 해서 친구의 정의를 내 놓았는데그 첫째가 모든 사람이,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릴 그때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 어떤 이유로든지 모든 사람이 나를 배척하고 버릴 때에 나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이 친구이며 둘째는 나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는 너를 안다. 네 억울함을 안다. 네 고통을 안다. 네가 바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네 진실을 안다" 고 말하면서 나의 침묵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친구이고 또 하나는 그와 만나면 기쁨이 제곱으로 커지고 슬픈 마음으로 만나면 슬픈 마음이 자꾸만 작아져서 없어지는 그것이 진정한 친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런 친구는 세상에는 없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친구입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어보셨습니까? 이 작품이 왜 그렇게 감동을 줄까요? 그 책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네폴류도프 공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는 겉으로는 근사하나 속으로는 정욕과 안일만을 추구하는 인생이며 그가 어린 하녀를 농락했지만 인간의 죄성으로 인한 죄에 대한 불감증으로 아무런 가책을 모릅니다.
그러나 또 하나 부활에서 보여준 위대한 사상은인간은 그렇지만 또 한편의 구석에는 진실을 향한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네풀류도프가 배심원이 되어 한 살인자 여자를 판결하는데,그 살인을 한 여자가 바로 다름 아닌 자기가 농락하고 버린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 여자가 그런 사람이 된 원인이 자기에게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심이 깨어나서 그는 인생에 U턴을 합니다. 즉 바르게 살겠다고 하여 양심에 모든 것들을 버리고 카츄사와 함께 시베리아로 떠납니다.
톨스토이는 이 전환을 이 유턴을 부활이라고 합니다.이 책을 사람들이 많이 읽었고 당시 인류최고의 책이라고 격찬을 했지만 사람들은 회심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톨스토이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이 위대한 부활을 읽었지만 10년도 안되어서 부정부패로 인하여 무신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에게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덕의 부활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사람의 변화는 감동으로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감동은 사람을 순간적으로는 움직이지만 변화를 시키지는 못합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요?사실입니다. 오직 사실만이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었습니다.그래서 12명의 제자들이 다 180도가 변화되어서 새로운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가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지 않아도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 우리의 죽은 양심이 깨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양심의 능력, 진리의 능력이 나타나서 우리가 나만 변화시킬 뿐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 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허무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부활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환난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 부활신앙이 있어야만 우리는 고독도 죽음도 못된 생활도 청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소망 위에서만이, 참으로 바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기는,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놀라운 길을 가르치려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은 그 자체로서 자신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땅에 심겨지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어느 시점에 가서 다 말라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심겨질 때 땅 속에서 썩게 되고 새 생명으로 싹이 돋아나고 줄기가 생기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의 형태는 없어졌지만 그것이 소멸된 것이 아니고 변형된 것입니다.우리는 이 표상에서 부활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은 현세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부활은 완전히 소멸된 후 새로운 것의 창조가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삶의 의미며 목적입니다. 부활은 삶의 완성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잠시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 같은 세상이요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세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연연하다가 영원한 세상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놓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 세상을 놓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저 세상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죽어서 갈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도 맛보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 속에 들어있는 회복의 능력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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