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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막9:17-24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막9:17-24 +
우리는 살다보면 자신의 힘이나 지혜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 환경,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가 두 가지 반응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가능은 없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우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문제 앞에 부딪쳐 보자라고 도전을 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인생의 많은 역경과 시련이 극복되고 그리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그런 놀라운 장면들을 우리는 자주 볼 수 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에서 정말 어떤 불가능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불가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서 죽음의 문제,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인간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죽음을 가져왔던 원인인 죄 문제를 우리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죄를 덜 짓는 사회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죄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 될 수는 없습니다.
죄에서 파생된 질병의 문제 우리는 좀 더 병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병이 없는 사회, 병이 없는 환경이란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어떤 불가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에 사람은 사람됨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 말고 정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그만 어려움이 생겨도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너무 쉽게 수용해 버리고 한계를 낮추어 버리고 인간의 역경 앞에서 자기의 한계를 너무 낮게 낮추어 버리고 쉽게 인생의 어떤 난제 앞에서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가능성의 한계 앞에 도전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들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우리가 배워야할 삶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시면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이 물론 열심히 노력을 했겠지요. 그러나 이 아이의 병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 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순간 이 아버지나 무리들에게는 새로운 소망, 어쩌면 마지막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이 이 불가능의병, 간질병은 지금도 치유하기 힘든 병입니다마는 이 병을 예수께서 치유하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인생의 상당한 불가능의 한계들을 돌파할 수 있는 그 삶의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배울 수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19절의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이 말씀에서 강조된 단어는 내게 오라는 단어입니다. 내게로 데려오라. 한번 따라서 하십시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우리가 종종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어떤 어려움 속에 빠진 사람들,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에 한번 나와 보세요. 하나님 의지하시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저는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그렇게 말해야 할 줄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의 희망을 안고 초청받은 대로, 전도 받은 대로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렇지 않죠.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압니다. 물론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그들이 참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어떤 문제의 해결을 기도할 때 또 흔히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기대 가운데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저는 그것도 나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종종 우리 교인들에게 부탁을 받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그러면 교인들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것은 잘하는 일이고 해야 될 일이고 그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병든 자들아 교회의 장로들을 즉 교회의 지도자들을 청하라 그리고 지도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면서 위해서 기도하라 '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지도자가 병을 고칠까요? 아닙니다. 지도자는 도구에 불과하고 매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치신 분은 궁극적으로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사람이 아니거든요. 근데 마치 사람이 고치는 것처럼 그렇게 설명 을 한다든지 그렇게 제시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신앙의 정도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정말 진정한 목자 되신 주님 앞으로 달려가도록, 그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주님을 가르치고 주님을 지향하는 것이지, 우리가 어떤 특별한 능력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책임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메시지로, 교육으로, 훈련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길이요, 그가 진리요, 그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홀로 선한 목자 되십니다. 그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때에만 우리는 문제를 넘어서서 불가능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움의 삶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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