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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기를 원하십니까? 2013.6.23. +
치유되기를 원하십니까? 2013.6.23. +
여러분, 병자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말 할 것도 없이 병 고칠 수 있다.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오늘 성경은 약속하기를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오기만 하면 다 치유될 수 있다.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56절의 마지막 구절에 보시면 '다 성함을 얻으니라' 그랬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나 어떤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 고침을 구하면서 나왔던 그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지 못한 것은 어떻게 말씀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다 치유 받는다' 이 말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앞에 붙어있는 전제가 있습니다. '손을 대는 자는' 그랬습니다. 주 앞에 나오면 치유는 반드시 일어나는데 그 치유를 발생시키기 위한 상황적 조건이 있다는 것을 본문은 전제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야 한다." 또 다 성함을 얻는다는 말은 비단 육체의 고침을 뜻할 때만 사용되는 그런 단어는 아닙니다. 성함을 얻는다. 온전하게 된다. 이 말은 육체적으로 잘 된다는 말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잘 된다는 그런 의미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육체적 차원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인 차원에서의 치유를 약속합니다. 영적인 치유, 그러면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구원이지요. 구원이야말로 치유의 시작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우리들이 기도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마음과 육체가 다 치료를 받고, 새로워지고, 구원을 경험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가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그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그는 어디나 다 계시지요.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에 보시면 어디나 계신 그 하나님이 한 특별한 장소를 선택하여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모습을 나타내시고,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기적을 나타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습니다.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에나 다 계신데 성전이 왜 필요해요? 그러나 내가 거할 성소를 지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술어로 말하면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고 말합니다. 초월하시는 하나님 우주도, 하늘의 하늘도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우신 하나님이 그러나 때로는 자신을 제한하시고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임재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주의 이름을 높여 드리며 주님을 찬양하는 곳 교회, 주께서 거기에 임재 하십니다. 거기에 주님의 모습을 나타내십니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 주십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예배가 왜 중요한지 아셨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를 찾아오셔서 특별한 의미에서 우리 가운데 자신의 영광을 계시하실 주님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 놀라운 구원자 예수, 치유자 예수가 게네사렛 땅에 오셨다. 이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 예수를 만나러 달려 왔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다 온전해지고 구원을 경험하고 새로워지길 위하여 하실 일이 있습니다.
예수께로 사람들을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55절을 다시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왜 침상채로 메고 나왔을 까요? 스스로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자기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병든 사람. 완전한 무력 속에 절망 속에 주저앉은 이 사람.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침상을, 가지고 와서 들쳐 업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중풍병자 한 사람. 그가 고침 받고 죄 사함 받고 그가 새로워지는 인생을 기대하면서 몇 사람이 그를 도 왔습니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왜 우 리가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오직 한 생각. 내 친구는 예수님 만나야 한다. 그것밖에는 다른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지불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데리고 거기까지 오는 시간. 그리고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지붕을 뚫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그들의 운명의 변화, 인생의 변화를 원한다면 그 정도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그 들이 손을 내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56절 입니다.“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손을 댔다는 말이 그냥 손만 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손을 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손을 댔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당신이 나를 고쳐주실 것을 정말 믿습니다"하고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은 다른 의미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터치. 믿음의 손을 내미는 것.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아! 어쩌면 나도 고칠 것 같다."예수님..나 고쳐 주세요. 예수님 나 구원 해주세요. 예수님 나도 당신을 신뢰하고 싶어요. 나도 변화되고 싶어요. 당신을 믿습니다.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옷을 touch하는 그 순간. 주의 능력이 그에게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는 새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고침 받기 시작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들을 데리고 와서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복음을 설명해 줄 수가 있습니다. 거기까지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것을 전도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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